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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眞表)는 어려서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고 산에 가서 사냥을 한 후 개구리 일은 잊고 지내다가, 이듬해 봄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 그곳에 가보니 지난해에 담가 둔 그대로 버들가지에 꿰어진 채 울고 있는 개구리를 보았다 한다. 이에 뉘우치고 불도에 뜻을 두어 12세에 [[김제 금산사|김제 금산사(金山寺)]]로 들어가 [[숭제|숭제법사(崇濟法師)]]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ref>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85175&cid=43671&categoryId=43671 진표]",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진표(眞表)는 어려서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고 산에 가서 사냥을 한 후 개구리 일은 잊고 지내다가, 이듬해 봄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 그곳에 가보니 지난해에 담가 둔 그대로 버들가지에 꿰어진 채 울고 있는 개구리를 보았다 한다. 이에 뉘우치고 불도에 뜻을 두어 12세에 [[김제 금산사|김제 금산사(金山寺)]]로 들어가 [[숭제|숭제법사(崇濟法師)]]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ref>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85175&cid=43671&categoryId=43671 진표]",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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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았으며,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ref>안성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744 탁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았으며,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ref>안성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744 탁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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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 23:40 기준 최신판
진표(眞表) | |
대표명칭 | 진표 |
---|---|
한자 | 眞表 |
성씨 | 정씨(井氏) |
출신지 | 전라북도 전주 |
정의
신라 중기의 승려.
내용
진표(眞表)는 어려서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고 산에 가서 사냥을 한 후 개구리 일은 잊고 지내다가, 이듬해 봄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 그곳에 가보니 지난해에 담가 둔 그대로 버들가지에 꿰어진 채 울고 있는 개구리를 보았다 한다. 이에 뉘우치고 불도에 뜻을 두어 12세에 김제 금산사(金山寺)로 들어가 숭제법사(崇濟法師)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1]
숭제법사는 일찍이 당(唐)나라에 들어가 선도(善道)에게 배우고 오대산(吾臺山)에서 문수보살(文殊普薩)의 현신(現身)을 맞아 오계(五戒)를 받고 돌아왔으므로 진표가 도통(道通)의 요령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선계산(仙溪山) 불사의암(不斜議菴)에 들어가 7야(夜) 7일(日)을 고행(苦行)으로 마음을 닦은 끝에 740년(효성왕 4) 3월 15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현신을 맞아 정계(淨戒)를 받았다. 다시 부안 영산사(靈山寺)에 옮아가 도를 닦고 마침내 소원이던 미륵보살(彌勒菩薩)의 현신을 맞아, 752년(경덕왕 11) 2월에 《점찰경(占察經) 2권》과 간자(簡子 : 점치는 대쪽) 189개를 받았다.[2]
760년(경덕왕 19)에 변산의 부안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미륵상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하다 762년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교법(敎法)을 전해 받고 산에서 내려왔다. 대연진(大淵津)에서 용왕으로부터 옥과 가사를 받았고 용왕의 권속들이 도와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이때부터 금산사에 머물면서 해마다 개단(開壇)하고 교화를 폈고, 금산사를 떠나서는 속리산·강릉·금강산 등에서 중생을 교화하였다.[3]
금강산에 들어가 고성 발연사를 창건하고 7년간 머무르면서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으며, 흉년에 굶주린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다. 이 무렵 영심(永深)·융종(融宗)·불타(佛陀) 등이 속리산으로부터 찾아와 계법을 구하자, 그들에게 의발과 『점찰선악업보경』 및 『공양차제비법』, 189개의 간자와 미륵의 두 간자를 전하여 주면서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교법을 유포할 것을 부탁하였다.[4]
속리산으로 돌아간 영심 등은 스승이 일러준 곳을 찾아 길상사(吉祥寺)를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어 진표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이들 외에도 보종(寶宗)·신방(信芳)·체진(體珍)·진해(珍海)·진선(眞善)·석충(釋忠) 등의 뛰어난 제자들이 모두 산문(山門)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았다.[5]
제자에 영심(永深)ㆍ보종(寶宗)ㆍ신방(信芳)ㆍ체진(體珍)ㆍ진해(珍海)ㆍ진선(眞善)ㆍ석충(釋忠) 등이 있는데 모두 산문(山門)의 조(祖)가 되었다. [6]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았으며,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7]
지식 관계망
- 김제 금산사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숭제 | 진표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불사의암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진표 | 부안 영산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진표 | 부안 부사의방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김제 금산사 | 진표 | A는 B가 중창하였다 | A ekc:renovator B |
고성 발연사 | 진표 | A는 B가 창건하였다 | A ekc:founder B |
진표 | 영심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융종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불타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천 길상사 | 영심 | A는 B가 창건하였다 | A ekc:founder B |
진표 | 보종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신방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체진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진해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진선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진표 | 석충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주석
-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진표", 인명사전,
『네이버지식백과』online . -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진표", 인명사전,
『네이버지식백과』online . - ↑ 이창섭, "진표율사",
『디지털김제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창섭, "진표율사",
『디지털김제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창섭, "진표율사",
『디지털김제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진표", 인명사전,
『네이버지식백과』online . - ↑ 안성두, "탁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안성두, "탁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창섭, "진표율사",
『디지털김제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진표", 인명사전,
『네이버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