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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ref>김경추, 정암,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302559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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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선이다.<ref>김경추, 정암,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302559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내용'''==
 
=='''내용'''==
현재의 [[영동선]] 노선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것은 [[철암선]](철암∼묵호간)으로 이미 1940년 8월에 개통되었으며, [[삼척선]](삼척∼북평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간)은 196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영동선]]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하는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되었다. [[영암선]]의 건설은 해방 이후 산업의 부흥을 위하여 최초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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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영동선]] 노선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것은 [[철암선]](철암∼묵호간)으로 이미 1940년 8월에 개통되었으며, [[삼척선]](삼척∼북평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간)은 196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영동선]]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하는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되었다. [[영암선]]의 건설은 해방 이후 산업의 부흥을 위하여 최초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ref>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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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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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ref>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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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된 영동선 전철은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기철도|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 톤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ref>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423968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ref><br/>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었다.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된 [[영동선 전철]]은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기철도|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t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ref>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423968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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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으며,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ref>김영기, 손승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312 전기철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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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ref>김영기, 손승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312 전기철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영암선은 이와 같은 목적에서 ECA의 원조로 1949년 4월 기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건설 공사는 불가피하게 중단되었다. 휴전 후 1953년 9월FOA의 원조로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험준한 산악지역이라는 불리한 자연조건과 부족한 자재로 가장 어려운 공사가 계속되었으며, 공기 단축을 위하여 군부대까지 동원되었다. 이러한 난공사로 개통된 영암선은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산업철도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암선이 개통되기 이전 태백산맥에서 채굴된 지하자원의 수송은 순전히 해로에만 의존하였고, 따라서 이 지역 산업의 본격적인 개발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영암선의 개통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 철도는 영동선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태백산맥을 횡단하여 강릉에 이르는 대 산업철도로서 그간의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왔다.
 
또한 1975년 12월철암∼동해간이 전철화되었고, 1997년 3월에는 영주∼철암간이 전철화되었다. 그리고 2005년 9월에는 동해∼강릉 구간의 전철화가 마무리되면서 영동선 전구간은 전철화되었다. 또한 '지그재그 철로'인 스위치 백(switch back, Z자형) 구간이었던 통리역∼나한정역 구간의 속도 향상과 안전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1999년 12월 총 사업비 5,368억원을 투입, 태백 동백산역에서 삼척 도계역 간 17.8km 철도이설공사를 실시하여 13년 만인 2012년 6월 27일 개통하였다. 이 구간에 건설된 솔안터널은 총 길이 16.7k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나선형 철도터널이다. 따라서 영동선 철도는 전철화와 터널공사로 향후 그 역할이 더욱 증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황]
 
영동선 철도는 산업철도인 만큼 전체 열차 운행 횟수 중 약 4분의 3을 화물열차 운행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객보다는 주로 화물 운송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9년 현재 여객열차 운행은 상행선(강릉 행)과 하행선(영주 행)이 각각 5회씩 운행하고 있으며, 2008년의 여객 운송량은 73만 5,547명이다. 한편 2008년의 화물수송량은 466만 1,955톤으로, 2000년대 초반에 비하여 증가하였다. 화물품목별로는 무연탄이 289만 3,876톤으로 가장 많으며, 그 뒤를 이어 시멘트 107만 5,300톤, 잡화 43만 6,304톤, 광석, 컨테이너 등이 있다. 화물수송량이 전체 철도 화물수송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의 6.6%에서 2008년에는 9.9%로 증가하였다.
 
  
 
=='''지식관계망'''==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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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ncyves/Graph/C097/C097.htm "산업선전철(박각순)"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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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추, 정암,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302559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경추, 정암,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302559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423968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423968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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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유용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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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민족기록화]][[분류:개념]]
# 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류:민족기록화]][[분류:개념]][[분류:지/수정요망]]
 

2017년 12월 1일 (금) 01:59 기준 최신판

영동선 전철
(嶺東線 號線)
민족팀 일러 지하철.png
대표명칭 영동선 전철
한자표기 嶺東線 號線
영문명칭 Yeongdong Line
이칭 영동선
유형 지명
관련개념 전기철도


정의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선이다.[1]

내용

현재의 영동선 노선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것은 철암선(철암∼묵호간)으로 이미 1940년 8월에 개통되었으며, 삼척선(삼척∼북평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간)은 196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영동선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하는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되었다. 영암선의 건설은 해방 이후 산업의 부흥을 위하여 최초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2]

건립경위

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3]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된 영동선 전철은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 톤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4]

의의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5]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영동선 전철 전기철도 A의 유형은 B이다 A dcterms:type B
영동선 전철 영동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동선 산업선 전철화 정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산업선 전철화 정책 중앙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산업선 전철화 정책 태백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산업선 전철화 정책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경제개발 5개년계획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박정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각순-산업선전철 영동선 전철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A ekc:depicts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 KTV 대한뉴스 - 제 1060호-산업선 전철 영동선 개통(게시일: 2016년 12월 8일)

주석

  1. 김경추, 정암, "영동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중앙일보,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5. 김영기, 손승호,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김영기, 손승호,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경추, 정암, "영동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중앙일보,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