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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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이 [[백관의 조복|조복]]이나 [[백관의 제복|제복]], [[백관의 상복|상복]]을 입을 때 겉옷 위에 두르는 띠로,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백관]]의 품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ref>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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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이 [[백관의 조복|조복]]이나 [[백관의 제복|제복]], [[백관의 상복|상복]]을 입을 때 겉옷 위에 두르는 띠이다.<ref>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36쪽.</ref>
  
 
=='''내용'''==
 
=='''내용'''==
정(鞓)이라고 하는 띠바탕에 띠돈[帶錢]을 장식하여 만든 쌍타미형 품대가 사용되었다. 띠의 기본골격을 이루는 띠바탕은 가죽에 부드러운 양피나 魚皮 또는 비단으로 감싸는데, 이 소재의 색상은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단서가 된다. 관리들은 黑鞓 혹은 靑鞓을 사용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紫鞓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품대]]의 기본구조는 앞쪽의 좌우 겉으로 드러나는 ‘앞띠’와 앞띠 안쪽에 포개지는 ‘속때(보조대)’, 그리고 ‘뒤띠’로 이루어진다. 띠바탕에는 품계를 나타내는 띠돈이 달리게 되는데, 띠돈[帶錢]은 판아(板兒)·과(銙)·구(鉤)라고도 한다. [[품대]]의 앞 중앙에는 3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삼태(三台)라는 띠돈이 있다. 삼태는 중앙에 직사각형 띠돈과 좌우에 붙는 작은 직사각형 띠돈으로 완성되는데 개폐장치인 날름쇠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삼태 중앙 띠돈의 안쪽으로 우측 끝 2.5cm 정도에 암날름쇠가 달리고, 삼태 오른쪽 띠돈 끝에 수날름쇠가 달린다. 암수날름쇠는 삼태의 오른쪽 띠돈쪽으로 위치하는데 이는 날름쇠를 오른속으로 누르기 위해서이다. 삼태는 중심으로 좌우의 앞띠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이라는 이름의 띠돈을 단다. 6개를 좌·우에 3개씩 나누어 단다. 남두육성 뒤에는 가는 직사각형의 띠돈이 좌우로 각각 달리는데 좌측에 달리는 것을 좌보(左輔), 우측에 달리는 것을 우필(右弼)이라고 하여 좌우에서 보필한다는 의미이다. 좌보와 우필 안쪽에는 묶음쇠[束兒]라고 하는 가는 금속판을 달아 뒤띠를 끼워 고정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앞띠와 뒤띠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앞띠의 좌우 가장 끝에는 타미가 달린다. 타미는 ‘띠끝 장식판’이라고 하고 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형태를 띤다. 타미의 안쪽 중간에는 좌보·우보와 마찬가지로 묶음쇠를 달고 뒤띠를 끼워 앞띠와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뒤띠는 홀수의 띠돈이 장식되어 북두칠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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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대]]는 사용자의 품계에 따라 띠돈의 재료를 달리하여 사용하는데, [[경국대전|『경국대전』]]에 1품은 서대(犀帶), 정2품은 삽금대(鈒金帶), 종2품은 소금대(素金帶), 정3품은 삽은대(鈒銀帶), 종3품에서 종4품까지 소은대(素銀帶), 5품 이하는 흑각대(黑角帶)라고 규정되어 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2쪽.</ref> 조선 전기의 [[품대]]는 허리에 잘 맞도록 고안된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착용자의 허리둘레보다 큰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착용하면 뒤로 늘어지게 되었다. 규정에는 없으나 흑단령을 착용한 초상화나 유물 중에 '학정대(鶴頂帶)'가 많은 편인데, 이는 소금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부마]] 등을 비롯하여 종2품이 사용하는 [[품대]]였다.<ref>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30쪽.</ref> 조선시대에는 정(鞓)이라고 하는 띠바탕에 띠돈[帶錢]을 장식하고 양쪽에 타미(䤩尾)를 단 품대가 사용되었다. 띠의 기본 골격을 이르는 띠 바탕은 부드러운 양피나 어피(魚皮) 또는 비단으로 감싸는데, 이것의 소재나 색상이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단서가 된다. 관리들은 흑색 띠바탕[黑鞓] 혹은 청색 띠바탕[靑鞓]을 사용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자주색 띠바탕[紫鞓]을 사용하기도 하였다.<ref>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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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대]]는 사용자의 품계에 따라 띠돈의 재료를 달리 사용하는데 1품은 서대(犀帶), 정2품은 삽금대(鈒金帶), 종2품은 소금대(素金帶), 정3품은 삽은대(鈒銀帶), 종3품에서 종4품까지 소은대(素銀帶), 5품 이하는 흑각대(黑角帶)를 띠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2쪽.</ref> 조선 전기의 품대는 허리에 잘 맞도록 고안된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착용자의 허리둘레보다 큰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착용 시 뒤로 늘어지게 되었다. 규정에는 없으나 흑단령본 초상화나 유물 중에 학정대(鶴頂帶)가 많은 편인데 이는 소금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부마 등을 비롯하여 종2품이 사용하는 품대였다.<ref>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3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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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품대02 삽금대 조선시대품대에관한연구79쪽.jpg | 조선시대 삽금대.<ref>도보선, 「朝鮮時代 品帶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7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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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품대02 삽금대 조선시대품대에관한연구79쪽.jpg | 조선시대 삽금대.<ref>도보선, 「朝鮮時代 品帶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7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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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高福男, 「우리나라 服飾中 帶의 硏究  」, 『대한가정학회지』 제14권 1호, 대한가정학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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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福男, 「우리나라 服飾中 帶의 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14권 1호, 대한가정학회, 1976.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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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 조광복, 「朝鮮時代의 帶에 對한 考察」,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조광복, 「朝鮮時代의 帶에 對한 考察」,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崔銀水, 「조선시대 百官의 團領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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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銀水, 「조선시대 百官의 團領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유용한 정보===
 
  
 
[[분류:궁중기록화]]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분류:복식]]

2020년 7월 27일 (월) 13:45 기준 최신판


품대
(品帶)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23쪽
대표명칭 품대
한자표기 品帶
이칭별칭 각대(角帶)
구분
착용신분 백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백관조복이나 제복, 상복을 입을 때 겉옷 위에 두르는 띠이다.[1]

내용

품대는 사용자의 품계에 따라 띠돈의 재료를 달리하여 사용하는데, 『경국대전』에 1품은 서대(犀帶), 정2품은 삽금대(鈒金帶), 종2품은 소금대(素金帶), 정3품은 삽은대(鈒銀帶), 종3품에서 종4품까지 소은대(素銀帶), 5품 이하는 흑각대(黑角帶)라고 규정되어 있다.[2] 조선 전기의 품대는 허리에 잘 맞도록 고안된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착용자의 허리둘레보다 큰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착용하면 뒤로 늘어지게 되었다. 규정에는 없으나 흑단령을 착용한 초상화나 유물 중에 '학정대(鶴頂帶)'가 많은 편인데, 이는 소금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부마 등을 비롯하여 종2품이 사용하는 품대였다.[3] 조선시대에는 정(鞓)이라고 하는 띠바탕에 띠돈[帶錢]을 장식하고 양쪽에 타미(䤩尾)를 단 품대가 사용되었다. 띠의 기본 골격을 이르는 띠 바탕은 부드러운 양피나 어피(魚皮) 또는 비단으로 감싸는데, 이것의 소재나 색상이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단서가 된다. 관리들은 흑색 띠바탕[黑鞓] 혹은 청색 띠바탕[靑鞓]을 사용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자주색 띠바탕[紫鞓]을 사용하기도 하였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백관 품대 A는 B를 착용한다 A ekc:wears B
백관의 조복 품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제복 품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품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품대 조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품대 조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품대 제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품대 제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품대 단령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36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2쪽.
  3.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30쪽.
  4.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36쪽.
  5. 도보선, 「朝鮮時代 品帶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79쪽.
  6.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http://museum.dankook.ac.kr/) 소장.
  7.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14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高福男, 「우리나라 服飾中 帶의 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14권 1호, 대한가정학회, 1976.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 도보선, 「朝鮮時代 品帶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文光姬, 「中國 團領名稱에 關한 硏究」, 『한국의류학회지』 11권 1호, 한국의류학회, 1987.
  • 이은주, 「조선시대 품대의 구조와 세부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61권 10호, 한국복식학회, 2011.
  • 조광복, 「朝鮮時代의 帶에 對한 考察」,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崔銀水, 「조선시대 百官의 團領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