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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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인물의 | + | 하지만 인물의 묘사가 다소 서툰 점으로 보아 당시에 제작한 그림인지 아니면 후대의 모본인지는 좀 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1604년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비롯하여 당시의 풍속과 복식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다. 병풍 왼쪽 아래에는 임자년(壬子年)에 몽원(夢園) [[김완|김완(金完)]]이 기증한 것이라 적혀 있다.<ref>정병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581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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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四溟大師日本上陸行列圖八曲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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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
---|---|
한자표기 | 四溟大師日本上陸行列圖八曲屛 |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
지정일 | 1990년 1월 16일 |
소장처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
관련장소 | 밀양 표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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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表忠寺)에 있는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 일행의 행렬을 그린 병풍.
내용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선조 37), 왕명을 받은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조선 대표로 일본에 평화를 논하기 위해 갔을 때, 그 일행의 행렬을 그린 8폭짜리 병풍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했으며, 크기는 각 폭 당 세로 100㎝, 가로 51.7㎝이다.[1]
여기에 등장하는 인원은 1,020명에 달하는데, 그중 20명은 사명대사를 포함한 조선 측 수행원이다. 당시 일본 관행은 일반 사신을 영접할 때 보통 300명을 보냈는데, 사명대사에게는 1,000명을 보내 수행하게 한 것으로 보아 그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2]
하지만 인물의 묘사가 다소 서툰 점으로 보아 당시에 제작한 그림인지 아니면 후대의 모본인지는 좀 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1604년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비롯하여 당시의 풍속과 복식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다. 병풍 왼쪽 아래에는 임자년(壬子年)에 몽원(夢園) 김완(金完)이 기증한 것이라 적혀 있다.[3]
지식관계망
- 사명대사 유정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 밀양 표충사 | A는 B에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 유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주석
-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정병모,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정병모,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