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고행록 (해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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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화) 21:41 기준 최신판
본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및 2016~2017년에 진행한 금요강독회 중 한산이씨 고행록 (해독) 관련 '발표내용'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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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庚申年)의 셔인(西人)이 됴뎡(朝廷)에 들매 십월(十月)의 디례(知禮) 덕소(謫所)로 가시고 나 노친(老親) 뫼고 남문(南門)의 어현(阿峴)집의 이셔 그 겨울 풍단(風丹)으로 병환(病患)이 듕(重)오시니 망극(罔極)기을 어이 다 긔록(記錄)오리오마 텬되(天道ᅵ) 됴으셔 즉시(卽時) 낫오시니 경(慶事ᅵ) 이 업되 노친(老親)겨오셔 뎍소(謫所)을 각 오셔 심(心思)을 마 뎡치 못여 오시고 나도 역시 혼자 뫼고 잇기 민망졀박(憫惘切迫)여 삼월(三月) 념 후(念後) 뎍소(謫所)로 뫼고 가되 | 경신년(1680, 숙종 6) 서인들이 조정에 들어서자 10월에 남편이 경상도 지례로 유배가셨다. 나는 노친을 모시고 한성부 남문 밖 아현동 집에 있었는데, 그해 겨울에 노친께서 풍단으로 위중하셨다. 그 망극함을 어찌다 기록하겠는가마는, 하늘이 도우시어 곧바로 나으셨으니 경사스럽기 그지없었다. 노친께서는 유배지의 아들을 생각하시어 마음을 차마 가라앉히지 못하셨고, 나 또한 혼자 모시고있기 민망하고 절박하여 이듬해 1681년(숙종 7) 3월 20일 뒤에 노친을 모시고 지례 유배지로 갔다. |
엿새 길을 열이틀의 참(站)식 촌촌(寸寸)이 가고 긔력(氣力)도 안녕(安寧)오시니 긔특(奇特) 다(多幸)되 내 만삭(滿朔)여 구삭(九朔)이 되엿고 대병(大病)을 여러 번 디 낸 사이라 겨유 겨유 득달(得達)여 월(四月) 초뉵(初六) 져(行邸) 드시고 무(無事)히 득달(得達)오셔 긔력(氣力)이 죠곰도 불평(不平)오신 일이 아니 겨오시니 비록 뎍듕(謫中)이나 일개(一家ᅵ) 모드니 텬(天幸)만녀기시더니 월(四月) 망 후(望後) 홀연(忽然)히 학질(瘧疾)치 병환(病患)을 엇오셔 그리 강녕(康寧)오시더니마 졈졈 듕(重)시니 | 엿새 길을 열이틀에 걸쳐 하루 한참씩 천천히 갔고, 노친께서도 다행히 안녕하셨으나, 나는 아홉 달 만삭에다 큰 병을 여러 번 치른 몸이라 겨우겨우 갔다. 4월 초엿새에 행저에 들렀다가 무사히 도달하였으니 노친께서는 기력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으셨다. 비록 유배 중이나 가족이 모여 살게 된 것을 천행으로 여겼다. 4월 보름 즈음 그리 간녕하시던 노친께서 갑자기 학질 같은 병환을 얻으시어 점점 위중하셨다. |
듀야망극(晝夜罔極) 듕(中) 내 산(解産)을 오월(五月)초 (初生)의 고 남(生男)니 이 듕(中)이나 텬되(天道ᅵ)도으심인가 인 샹시(生時) 희(喜幸)되 듀야(晝夜) 라시던 거시 나시되 흥황(興況)이 업 시브고 병환 듕(病患中)이오시나 긔특(奇特)이 녀기오시고 보쟈 오시 거 들먹이기 무셔워 죵시(終是) 뵈디 못 유(遺恨)이 되고 | 그리고 나는 밤낮으로 망극하던 중 5월 초순에 아들을 낳았다. 하늘이
도우신건지 꿈인 듯 생시인 듯 기뻤으나, 밤낮으로 바라던 아들이 태어나 이보다 좋 은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노친께서는 기특하게 여겨 병환 중에도 보고싶어 하셨으나, 아이를 들먹이기가 무서워 끝내 보이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 있다. |
옷 거 두시 거 못여 닙혀셔 이칠(二七) 디나며 경풍(驚風)이 되여 을 두고 날마다 딜(室塞)을 되 괴이(怪異)여 히 오고 반반고 얼굴이 긔이(奇異)니 절박(切迫) 졍(情)의 그려도 사라낼가 라다가 뉵월(六月)의 일셕(一夕)의 일허려 괴산(槐山) 선영(先塋)으로 저을 보내고 애 믜여디고 밤이면 뉘엿던 자리을 디며 먹던 져며 간댱(肝腸)이 촌촌(寸寸)이 녹 견여 살기 어려오되 병환 듕(病患中)이매 설운 거 서리 다마 디내며 병환(病患)은 졈졈 듕(重)오신 | 노친께서 아이 옷 지을 것을 주시는 것도 못 해 입히고, 아이는 열나흘 만에 경풍을 일
으켜 한 달간 날마다 숨이 막혔다. 괴이하게 살이 오르고 반반하며 얼굴이 기이하니 절박한 마음에 그래도 살아나기를 바랐으나, 6월 어느 날 저녁에 죽고 말았다. 괴산 선영으로 저를 보낸 뒤 가슴이 미어지고, 밤이면 뉘었던 자리를 어루만지고 먹던 젖 을 짜내며 간장이 마디마디 녹는 듯 견디기 어려웠다. 노친 병환 중이라 서러운 마음을 서리서리 속으로만 담아 지냈다. |
음셩(陰城)으로 냥이(量移)시니 뫼고 갈 길흔 업고 금부셔리(禁府胥吏) 십여 일을 묵으며 수이 가쟈 촉되 마 나디 못 야 나가시다가 도로 드러와 오번 하딕(下直)의 영결(永訣) 던 일은 이제 각여도 가이 막힐 시브다. | 남편께서 또 음성으로 옮기게 되셨으나, 노친의 병환이 점점 위중하시어 모시고 갈 도리가 없었다. 금부서리는 십여 일을 묵으며 빨리 가자 재촉하였으나, 남편께서는 차마 떠나시지 못하고 나가시다가 도로 들어와 노친께 네댓 번 하직 인사를 올렸다. 이 때 영결했던 일은 이제 생각하여도 가슴이 막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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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각니 (百事ᅵ) 다 부운(浮雲)이오 셔산낙일(西山落日) 일이 되여시니 언머 셔샹의 이시리오마 나지 면 미(滋味) 업 가(家事)의 골몰(汨沒)다가 저녁이면 비복(婢僕)도 제 쳐소(處所)로 들가고 쳑쳑심회(慽慽心懷)가디록 그음 업니 부모제형(父母諸兄)이시나 도라가신 졍녕(精靈)들이 어 곳의 겨신고 아이 겨신가 업가 므 죄벌(罪罰)노 뉵십지년(六十之年) 되도록 이셔 셜우 며 괴로온고 (恨)며 원(怨)노라. | 또 돌이켜 생각하니 세상만사 다 뜬구름 같고 서산으로 지는 해와 같노라. 내 얼마나 세상에 있겠는가마는, 낮이면 재미 없는 집안일에 골몰하다가 저녁이면 종들도 제 처소로 들어가니 서글픈 마음은 갈수록 그지 없어라. 부모형제나 돌아가신 정령들은 어디에 계시는가?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무슨 죄벌로 육십 년 되도록 이토록 서러우며 괴로운가? 한탄하며 원망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