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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상세
 
|사진=BHST_JoJungrae.jpg
 
|사진출처=문영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4&aid=0002346219 조정래 작가-김초혜 시인 부부와 북한산 둘레길 걷기]", 『파이낸셜뉴스』, 2010년 10월 12일.
 
|대표명칭=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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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趙廷來
 
|생년=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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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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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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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성장배경===
 
===성장배경===
조정래는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순천 선암사]]에서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종현]]은 대처승이었다. 1947년, 선암사의 부주지인 아버지가 사답(寺畓)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준 일로 주지와 충돌이 일어났다. 이는 이듬해인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 이후 모략에 휘말리고 가족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되었다. 조종현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원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갔고, 이튿날엔 어머니와 형제들 넷이 재판소 앞마당에 끌려 나가는 수모를 겪었다.<ref>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88&cid=41708&categoryId=41713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1949년에는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하였는데, 1951년 1·4후퇴 때는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ref>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정래는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야뇨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88&cid=41708&categoryId=41713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1953년에는 벌교상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벌교로 이사하였다. 1959년에는 보성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국문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여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A0%95%EB%9E%98 조정래]",<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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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순천 선암사|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에서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종현(趙宗玄)은 대처승이었다. 1947년, [[순천 선암사|선암사(仙巖寺)]]의 부주지인 아버지가 사답(寺畓)<ref>절 소유의 논</ref>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준 일로 주지와 충돌이 일어났다. 이는 이듬해인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ref>1948년 10월 10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6073&cid=40942&categoryId=39201 여수·순천사건]",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이후 모략에 휘말리고 가족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되었다. 조종현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원<ref>1946년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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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된 우익청년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4214&cid=46626&categoryId=46626 서북청년회]",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갔고, 이튿날엔 어머니와 형제들 넷이 재판소 앞마당에 끌려 나가는 수모를 겪었다.<ref>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88&cid=41708&categoryId=41713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1949년에는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하였는데, 1951년 1·4후퇴 때는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ref>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정래는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야뇨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88&cid=41708&categoryId=41713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1953년에는 벌교상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벌교로 이사하였다. 1959년에는 보성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국문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여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A0%95%EB%9E%98 조정래]",<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문인활동===
 
===문인활동===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73년에는 『월간문학』편집장, 1976년에는 『소설문예』발행인으로 활동했다. 1978년에는 도서출판 민예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문학』의 주간을 맡았다. 등단 이후 작품활동도 꾸준히 했는데 조정래의 작품세계는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반기, 그 이후를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의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8467 조정래]",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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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현대문학』<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665&cid=46645&categoryId=46645 현대문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한국학중앙연구원.</ref>에 《누명》,《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73년에는 『월간문학』<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0552&cid=46645&categoryId=46645 월간문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한국학중앙연구원.</ref>편집장, 1976년에는 『소설문예』발행인으로 활동했다. 1978년에는 도서출판 민예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문학』<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5822&cid=46645&categoryId=46645 한국문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한국학중앙연구원.</ref>의 주간을 맡았다. 등단 이후 작품활동도 꾸준히 했는데 조정래의 작품세계는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반기, 그 이후를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의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8467 조정래]",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전반기의 작품들로는 토속적인 공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청산댁》(1972), 현실의 비리와 삶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폭력교사》(1971), 《비탈진 음지》(1973), 《천동설 시대》(1974), 《이방지대》(1975) 등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삼은 그는 《한, 그 그늘의 자리》(1977), 현대문학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한《유형의 땅》(1981), 《인간의 계단》(1982), 《박토의 혼》(1983) 등이 있다.<ref>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932&cid=41708&categoryId=41737 조정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전반기의 작품들로는 토속적인 공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청산댁》(1972), 현실의 비리와 삶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폭력교사》(1971), 《비탈진 음지》(1973), 《천동설 시대》(1974), 《이방지대》(1975) 등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삼은 그는 《한, 그 그늘의 자리》(1977), 현대문학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한《유형의 땅》(1981), 《인간의 계단》(1982), 《박토의 혼》(1983) 등이 있다.<ref>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932&cid=41708&categoryId=41737 조정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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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 01:24 기준 최신판

조정래(趙廷來)
문영진, "조정래 작가-김초혜 시인 부부와 북한산 둘레길 걷기", 『파이낸셜뉴스』, 2010년 10월 12일.
대표명칭 조정래
한자표기 趙廷來
생몰년 1943년-
본관 함안
출생지 순천 선암사
국적 대한민국
대표저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조종현
유형 소설가



정의

대한민국의 소설가.

내용

성장배경

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에서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종현(趙宗玄)은 대처승이었다. 1947년, 선암사(仙巖寺)의 부주지인 아버지가 사답(寺畓)[1]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준 일로 주지와 충돌이 일어났다. 이는 이듬해인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2] 이후 모략에 휘말리고 가족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되었다. 조종현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원[3]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갔고, 이튿날엔 어머니와 형제들 넷이 재판소 앞마당에 끌려 나가는 수모를 겪었다.[4] 1949년에는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하였는데, 1951년 1·4후퇴 때는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5]1953년에는 벌교상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벌교로 이사하였다. 1959년에는 보성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국문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여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6]

문인활동

1970년 『현대문학』[7]에 《누명》,《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73년에는 『월간문학』[8]편집장, 1976년에는 『소설문예』발행인으로 활동했다. 1978년에는 도서출판 민예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문학』[9]의 주간을 맡았다. 등단 이후 작품활동도 꾸준히 했는데 조정래의 작품세계는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반기, 그 이후를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의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10]

전반기의 작품들로는 토속적인 공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청산댁》(1972), 현실의 비리와 삶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폭력교사》(1971), 《비탈진 음지》(1973), 《천동설 시대》(1974), 《이방지대》(1975) 등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삼은 그는 《한, 그 그늘의 자리》(1977), 현대문학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한《유형의 땅》(1981), 《인간의 계단》(1982), 《박토의 혼》(1983) 등이 있다.[11]

이러한 소설들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쓴 것이었지만,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광주를 방문하여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현장들을 직접 본후 그 원칙을 바꾸게 되었다.[12] 1983년 간행된 연작장편 《불놀이》는 작가의 작품 경향이 사회의식에서 역사성으로 옮겨가는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반기 작품들로는 《태백산맥》(1989), 《아리랑》(1995), 《한강》(2007)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민족적 비극이 빚어낸 인물들의 고단한 삶과 그 비극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13]

지식 관계망

  • 순천 선암사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조정래 순천 선암사 A는 B에서 태어났다 A edm:isRelatedTo B
조종현 조정래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태백산맥 조정래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아리랑 조정래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한강 조정래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조정래 광주민주화운동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절 소유의 논
  2. 1948년 10월 10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 "여수·순천사건", 『두산백과』online.
  3. 1946년 서울에서 결성된 우익청년단. "서북청년회",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정래는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야뇨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조정래",『위키백과』online.
  7. "현대문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8. "월간문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9. "한국문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10. "조정래", 『두산백과』online.
  11.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온라인 참조: "조정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2. "조정래",『위키백과』online.
  13. "조정래", 『두산백과』online.

참고문헌

  • 박철화 「조정래, 이야기의 만리장성」, 작가세계 2015년 봄호(통권 제104호), 2015, 65~79쪽.
  •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 년 자전 에세이』, 시사IN북, 2009.
  • 조정래, 『조정래의 시선』, 해냄, 2014.
  • 유임하, 『조정래: 민족의 삶과 역사적 진실』, 글누림 출판사, 2010.
  • 이태준, 「조정래 - 민중을 복원하고 민중을 발견하다」, 인물과사상 155, 2011, 81~92쪽.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온라인 참조: "조정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온라인 참조: "조정래", 나는 문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조정래", 『두산백과』online.
  • "조정래",『위키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