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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道義)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지금의 서울인 북한군(北漢郡) 사람이라고 전해진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5쪽.</ref>  
 
도의(道義)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지금의 서울인 북한군(北漢郡) 사람이라고 전해진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5쪽.</ref>  
  
도의의 부친은 흰 무지개가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모친은 어느 스님과 잠자리를 하는 꿈을 꾸고 나서 도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며, 태기가 있은 지 39개월만에 도의를 낳았다고 한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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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의 부친은 흰 무지개가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모친은 어느 스님과 잠자리를 하는 꿈을 꾸고 나서 도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태기가 있은 지 39개월만에 도의를 낳았다고 한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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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道義)는 중국 [[혜능|혜능(慧能)]]의 [[남종선|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ref>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쪽.</ref>
 
도의(道義)는 중국 [[혜능|혜능(慧能)]]의 [[남종선|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ref>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쪽.</ref>
  
도의가 언제 출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784년([[신라 선덕왕|선덕왕]] 5)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혜능]]이 『[[육조단경|육조단경(六祖壇經)]]』을 설법하였던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구족계|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ref>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79쪽.</ref> 이후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도일|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의 제자인 [[지장|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의 선법(禪法)을 전해 받았다.<ref>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ref>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8355&cid=50763&categoryId=50784 도의]",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당시 도의는 '명적(明寂)'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때 [[지장]]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도의'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6쪽.</ref> 또한 백장산(百丈山)의 [[회해|회해(懷海)]]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배우면서 "강서의 선맥(禪脈)이 모두 동국(東國)으로 가는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ref>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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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가 언제 출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784년([[신라 선덕왕|선덕왕]] 5)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혜능]]이 『[[육조단경|육조단경(六祖壇經)]]』을 설법하였던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구족계|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ref>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79쪽.</ref> 이후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도일(중국)|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의 제자인 [[지장|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의 선법(禪法)<ref>참선하는 법(法). 경(經), 논(論)에 의하지 않고 조사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부처의 심인을 전하는 법</ref>을 전해 받았다.<ref>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ref>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8355&cid=50763&categoryId=50784 도의]",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당시 도의는 '명적(明寂)'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때 [[지장]]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도의'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ref>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6쪽.</ref> 또한 백장산(百丈山)의 [[회해|회해(懷海)]]를 찾아가 법요(法要)<ref>불교의 의식</ref>를 배우면서 "강서의 선맥(禪脈)이 모두 동국(東國)으로 가는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ref>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ref>
  
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무르다 821년 귀국한 도의는 신라에 선법(禪法)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왕실이나 귀족세력에 화엄(華嚴) 등의 교학불교(敎學佛敎)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다, 당시 입당구법 선사들의 사상이 '마어(魔語)'라는 비난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도의의 선사상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ref>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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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무르다 821년 귀국한 도의는 신라에 선법(禪法)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왕실이나 귀족세력에 화엄(華嚴)<ref>만행, 만덕을 닦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 화엄경의 준말</ref> 등의 교학불교(敎學佛敎)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다, 당시 입당구법 선사들의 사상이 '마어(魔語)<ref>마귀의 말</ref>'라는 비난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도의의 선사상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ref>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4쪽.</ref>  
  
 
이에 도의는 [[양양 진전사|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년 동안 수도하였으며, 제자 [[염거|염거(廉居)]]에게 [[남종선]]을 전하였다. [[염거]]의 제자 [[체징|체징(體澄)]]은 전라남도 장흥의 가지산에 [[가지산문|가지산파(迦智山派)]]를 세워 크게 선풍을 떨쳤다.<ref>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이에 도의는 [[양양 진전사|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년 동안 수도하였으며, 제자 [[염거|염거(廉居)]]에게 [[남종선]]을 전하였다. [[염거]]의 제자 [[체징|체징(體澄)]]은 전라남도 장흥의 가지산에 [[가지산문|가지산파(迦智山派)]]를 세워 크게 선풍을 떨쳤다.<ref>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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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道義)의 승탑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은 무너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세웠으며, 1966년에 보물 제439호로 지정되었다.<ref>정영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4863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6년 5월 13일.</ref>
 
도의(道義)의 승탑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은 무너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세웠으며, 1966년에 보물 제439호로 지정되었다.<ref>정영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4863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6년 5월 13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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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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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8355&cid=50763&categoryId=50784 도의]",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198쪽.
 
*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198쪽.
*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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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야, "가지산문",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3-59쪽.
 
* 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종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807 도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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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락, 「원적 도의의 생애와 선사상」, 『한국중세사연구』 No.14, 한국중세사학회, 2003, 5-54쪽.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3215&cid=40942&categoryId=33380 도의]",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3215&cid=40942&categoryId=33380 도의]",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8355&cid=50763&categoryId=50784 도의]",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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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 15:50 기준 최신판

도의(道義)
장흥 보림사 조사전 내 도의 진영
대표명칭 도의
영문명칭 Doui
한자 道義
생몰년 ?-?
시호 원적(元寂)
도의(道義)
법호 명적(明寂)
성씨 왕씨(王氏)
출신지 북한군(北漢郡, 지금의 서울)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내용

탄생설화

도의(道義)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지금의 서울인 북한군(北漢郡) 사람이라고 전해진다.[1]

도의의 부친은 흰 무지개가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모친은 어느 스님과 잠자리를 하는 꿈을 꾸고 나서 도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태기가 있은 지 39개월만에 도의를 낳았다고 한다.[2]

활동

도의(道義)는 중국 혜능(慧能)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3]

도의가 언제 출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784년(선덕왕 5)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혜능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설법하였던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4] 이후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의 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의 선법(禪法)[5]을 전해 받았다.[6][7] 당시 도의는 '명적(明寂)'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때 지장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도의'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8] 또한 백장산(百丈山)의 회해(懷海)를 찾아가 법요(法要)[9]를 배우면서 "강서의 선맥(禪脈)이 모두 동국(東國)으로 가는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10]

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무르다 821년 귀국한 도의는 신라에 선법(禪法)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왕실이나 귀족세력에 화엄(華嚴)[11] 등의 교학불교(敎學佛敎)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다, 당시 입당구법 선사들의 사상이 '마어(魔語)[12]'라는 비난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도의의 선사상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13]

이에 도의는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년 동안 수도하였으며, 제자 염거(廉居)에게 남종선을 전하였다. 염거의 제자 체징(體澄)은 전라남도 장흥의 가지산에 가지산파(迦智山派)를 세워 크게 선풍을 떨쳤다.[14]

조계종의 종조

도의(道義)는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개조(開祖)로 일컬어지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추앙받는다.[15]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헌 제1장 제1조는 조계종이 "신라 도의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였다고 명시하고, 제2장 제6조는 "신라 헌덕왕 5년에 조계 혜능조사의 증법손 서당 지장 선사에게서 심인을 받은 도의국사를 종조로 하고, ..."라고 하여 도의가 조계종의 종조임을 선언하고 있다.[16][17]

도의에 대한 기록

도의(道義)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는 『조당집(祖堂集)』에 기록된 전기와 몇몇 선사들의 비문 등이 있다. 『조당집』에 도의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나머지는 비문의 기록과 같다(餘如碑文)'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도의의 비문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8]

그리고 도의의 선사상을 전하는 기록으로는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이 있으며, 당시 화엄종(華嚴宗)승통(僧統)지원(智遠)과의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19]

승탑

도의(道義)의 승탑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은 무너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세웠으며, 1966년에 보물 제439호로 지정되었다.[20]

지식 관계망

  • 가지산문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도의 남종선 A는 B와 관련있다
지장 도의 A는 B의 스승이다
회해 도의 A는 B의 스승이다
도의 염거 A는 B의 스승이다
염거 체징 A는 B의 스승이다
도의 양양 진전사 A는 B를 창건하였다
도의 양양 진전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도의 가지산문 A는 B를 개창하였다
가지산문 구산선문 A는 B에 포함된다
도의 조당집 A는 B에 기록되었다
도의 선문보장록 A는 B에 기록되었다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도의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784년 도의가 중국 당나라로 건너갔다.
821년 도의가 구법여행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1968년 도의의 승탑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이 발견되어 새로 세워졌다.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5쪽.
  2.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4쪽.
  3.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쪽.
  4.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79쪽.
  5. 참선하는 법(法). 경(經), 논(論)에 의하지 않고 조사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부처의 심인을 전하는 법
  6. 이종익, "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도의",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8.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6쪽.
  9. 불교의 의식
  10.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입문』, (주)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
  11. 만행, 만덕을 닦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 화엄경의 준말
  12. 마귀의 말
  13.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4쪽.
  14. 이종익, "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5. "도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6. "종헌 제1장~제10장", 종헌, 『종단안내』online, 대한불교조계종.
  17.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5쪽.
  18.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4쪽.
  19. 이일야,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41쪽.
  20. 정영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6년 5월 13일.

참고문헌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도의",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1-198쪽.
  • 이일야, "가지산문", 『해주에서 장흥까지 아홉개의 산문이 열리다』, (주)조계종출판사, 2016, 33-59쪽.
  • 이종익, "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동락, 「원적 도의의 생애와 선사상」, 『한국중세사연구』 No.14, 한국중세사학회, 2003, 5-54쪽.
  • "도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