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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식, 김지영, 박례경외 3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 김문식, 김지영, 박례경외 3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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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우, 「숙종 왕세자 책례시의 공정책 디자이너」, 『장서각 소장 ‘의례등록(儀禮謄錄)’ 자료의 탈초, 역주 및 현대화』, 장서각, 2015. | * 최연우, 「숙종 왕세자 책례시의 공정책 디자이너」, 『장서각 소장 ‘의례등록(儀禮謄錄)’ 자료의 탈초, 역주 및 현대화』, 장서각, 2015.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 | * 黃能馥, 陳娟娟,『中華歷代服飾藝術』, 中國旅遊出版社, 1999. | + | * 黃能馥, 陳娟娟, 『中華歷代服飾藝術』, 中國旅遊出版社,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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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7일 (일) 21:31 기준 최신판
쌍동계 (雙童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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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쌍동계 |
---|---|
한자표기 | 雙童髻 |
이칭별칭 | 쌍계(雙童), 총각(總角) |
구분 | 수식 |
착용신분 | 왕세자, 왕세손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조선시대 왕세자, 왕세손이 관례를 치르기 전에 책례를 받을 때 하는 머리모양이다.
내용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서 머리 꼭대기 양쪽에 봉긋하게 상투를 트는데 그 모양이 꼭 동물의 머리에 난 뿔[角]과 비슷하다. 또한 그 상투의 밑동을 총(總)이라 부르는 끈으로 묶기 때문에 '쌍동계(雙童䯻)' 혹은 '총각(總角)'이라고도 한다.[1] 1666년(현종 6)에 왕세자 책례에 착용할 복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666년(현종 6)에 왕세자 책례에 착용할 복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관례 전이었던 왕세자의 책례를 놓고 쌍동계만 하고 관모를 쓰지 않을 것인지, 쌍동계 위에 면관을 쓸 것인지에 관해 논의가 분분했다. 머리 형태나 관모에 관해 중국의 사례를 들며 논의한 끝에 쌍동계에 면관을 얹고 면복을 갖추기로 한다. 이듬해 헌종이 『문헌통고(文獻通考)』 등의 옛 문헌을 찾아 공정책의 형태를 고증하여 제작하게 하였다. 이 때 정해진 공정책의 형태는 백관의 조복과 제복을 입을 때 쓰는 양관에서 정수리를 없앤 형태였다. 결국 숙종이 왕세자였을 때 치른 책례에는 쌍동계에 공정책을 착용하게 되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세자 | 쌍동계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손 | 쌍동계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쌍동계 | 공정책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쌍계머리", 문화원형백과 전통머리모양과 머리치레거리,
주석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172~173쪽.
- ↑ 최연우, 『숙종 왕세자 책례시의 공정책 디자이너』, 『장서각 소장 ‘의례등록(儀禮謄錄)’ 자료의 탈초, 역주 및 현대화』, 2015, 23~28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문식, 김지영, 박례경외 3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李民周, 「朝鮮時代 冊禮儀에 나타난 儀式節次와 服飾 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 유희경·김문자,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 최연우, 「숙종 왕세자 책례시의 공정책 디자이너」, 『장서각 소장 ‘의례등록(儀禮謄錄)’ 자료의 탈초, 역주 및 현대화』, 장서각, 2015.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黃能馥, 陳娟娟, 『中華歷代服飾藝術』, 中國旅遊出版社,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