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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년 국사당은 남산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도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그곳이 [[조선 태조|태조]]와 [[자초|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국사당이라는 명칭도 [[자초|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ref>장주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978 인왕산 국사당]",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1925년 국사당은 남산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도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그곳이 [[조선 태조|태조]]와 [[자초|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국사당이라는 명칭도 [[자초|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ref>장주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978 인왕산 국사당]",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이건한 국사당은 영·정조 때의 건축기법을 바탕으로 한 원래의 국사당을 헐어 그대로 옮겨 복원하였다. 내부에 특이하게 아치형 대들보가 있는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목재의 짜임새가 튼튼한 것이 목공의 솜씨가 돋보인다. 인왕산 국사당은 다른 당집에 비해 건물이 견고하고, [[최영 무신도]]를 비롯하여 많은 무신도를 볼 수 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280000,11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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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4일 (목) 17:23 기준 최신판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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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인왕산 국사당 |
---|---|
한자표기 | 仁旺山 國師堂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번호 |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 |
지정일 | 1973년 7월 16일 |
소장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
|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에 있는 산신당이다.
내용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년(태조 5) 한양을 지키는 수호신사로서 북악신사(北岳神祠)와 함께 남산인 목멱산(木覓山)을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하며 지금 남산 팔각정이 있는 곳에 목멱신사(木覓神祠)를 두고 산신제를 지냈다. 매년 나라에서 재사를 지내면서 목멱산의 사당을 국사당(國師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1]
1925년 국사당은 남산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도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그곳이 태조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국사당이라는 명칭도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2]
이건한 국사당은 영·정조 때의 건축기법을 바탕으로 한 원래의 국사당을 헐어 그대로 옮겨 복원하였다. 내부에 특이하게 아치형 대들보가 있는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목재의 짜임새가 튼튼한 것이 목공의 솜씨가 돋보인다. 인왕산 국사당은 다른 당집에 비해 건물이 견고하고, 최영 무신도를 비롯하여 많은 무신도를 볼 수 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인왕산 국사당 | 조선 태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인왕산 국사당 | 자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최영 무신도 | 인왕산 국사당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각자료
주석
- ↑ "인왕산 국사당",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장주근, "인왕산 국사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참고문헌
- "인왕산 국사당",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장주근, "인왕산 국사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