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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전투(秋風嶺戰鬪) | |
대표명칭 | 추풍령전투 |
---|---|
한자표기 | 秋風嶺戰鬪 |
유형 | 전투 |
시대 | 조선 |
날짜 | 1592년 4월 27일 |
관련인물 | 조경,정기룡 |
목차
정의
임진왜란 당시 추풍령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1]
내용
1592년 4월 13일 부산포(釜山浦)에 상륙한 왜군이 북진하자 조정에서는 4월 17일 조경(趙儆)을 우방어사로 임명하여 즉시 추풍령으로 떠나게 하였다. 때마침 진주성 훈령봉사였던 30세 정기룡(鄭起龍)이 고향인 상주에서 변보를 듣고 조경 군진으로 찾아와 종군을 자청하였다. 이 무렵 경상도관찰사 김수(金睟)가 지례로 피신하면서 모병한 군사를 김산(현재의 김천)에 보내었고, 황간에서 의병을 규합한 장지현(張智賢), 장효현이 합류하여 500여 명이 모였다.[2]
경과
1592년 4월 27일 저녁, 조경은 군사를 분산시켜 청솔가지로 저녁밥을 지어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거나 한 사람에게 서너 개의 횃불을 들고 다니게 하여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 또, 호랑이 가죽을 씌운 황소 꼬리에 불을 붙여 돌진시키는 전술을 써서 황소를 호랑이로 착각한 적군 수백 명을 몰살하였다.[3]
이튿날 아침,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는 왜군과 백병전이 벌어지자 돌격장 정기룡이 말을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왜군을 무찔렀다. 하지만 끝내 무기와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지 못하였다. 이 전투에서 군졸 절반 이상을 잃었으며, 장지현, 장효현 형제 역시 전사하였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박석호-추풍령싸움 | 추풍령 전투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A ekc:depicts B |
추풍령 전투 | 추풍령 | A는 B에서 일어났다 | A edm:happenedAt B |
추풍령휴게소 | 추풍령 | A는 B에 위치한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정기룡 | 추풍령 전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조경 | 추풍령 전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김호동, "추풍령 전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호동, "추풍령 전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추풍령전투",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추풍령전투",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유용한 정보
- "추풍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