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실상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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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기념물 제77호이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신라 신문왕]] 9년(689)초의선사(草衣禪師)에 의해 창건되어 조선조 때 [[양녕대군|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변산 6대 사찰(六大寺刹)의 하나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6.25 전쟁|6·25]] 때 전소되었다. 전소되기 전까지는 대웅전·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었고, 150㎝ 크기의 입불(立佛)로 된 목조 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하였다고 하며, 절의 북쪽에는 부도암(浮屠庵)이 있었다 한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내변산의 직소폭포[龍湫]로 가는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위 형세가 온통 바위로 된 암산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원불교|원불교(圓佛敎)]] 교조인 [[박중빈|박중빈(朴重彬)]]이 절의 옆에 조그만 초당을 짓고 3년간 수도하였기 때문에, 이곳은 [[원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변산성지(邊山聖地)로 일컬어진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그동안 폐사지 상태로 내려오다가 1995년부터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다.<ref>조용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4351 부안실상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ref> | 전라북도 기념물 제77호이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신라 신문왕]] 9년(689)초의선사(草衣禪師)에 의해 창건되어 조선조 때 [[양녕대군|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변산 6대 사찰(六大寺刹)의 하나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6.25 전쟁|6·25]] 때 전소되었다. 전소되기 전까지는 대웅전·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었고, 150㎝ 크기의 입불(立佛)로 된 목조 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하였다고 하며, 절의 북쪽에는 부도암(浮屠庵)이 있었다 한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내변산의 직소폭포[龍湫]로 가는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위 형세가 온통 바위로 된 암산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원불교|원불교(圓佛敎)]] 교조인 [[박중빈|박중빈(朴重彬)]]이 절의 옆에 조그만 초당을 짓고 3년간 수도하였기 때문에, 이곳은 [[원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변산성지(邊山聖地)로 일컬어진다. [[부안 실상사|실상사]]는 그동안 폐사지 상태로 내려오다가 1995년부터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다.<ref>조용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4351 부안실상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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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 02:20 기준 최신판
부안 실상사 (扶安 實相寺) |
|
대표명칭 | 부안 실상사 |
---|---|
한자표기 | 扶安 實相寺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번호 |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77호 |
지정일 | 1986년 9월 9일 |
관련인물 | 양녕대군 |
|
목차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절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내용
부안 실상사에 대하여
전라북도 기념물 제77호이다. 실상사는 신라 신문왕 9년(689)초의선사(草衣禪師)에 의해 창건되어 조선조 때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변산 6대 사찰(六大寺刹)의 하나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6·25 때 전소되었다. 전소되기 전까지는 대웅전·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었고, 150㎝ 크기의 입불(立佛)로 된 목조 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하였다고 하며, 절의 북쪽에는 부도암(浮屠庵)이 있었다 한다. 실상사는 내변산의 직소폭포[龍湫]로 가는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위 형세가 온통 바위로 된 암산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원불교(圓佛敎) 교조인 박중빈(朴重彬)이 절의 옆에 조그만 초당을 짓고 3년간 수도하였기 때문에, 이곳은 원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변산성지(邊山聖地)로 일컬어진다. 실상사는 그동안 폐사지 상태로 내려오다가 1995년부터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다.[1]
연계 자원 보러 가기 |
• 월인천강지곡 |
지식 관계망
- 월인천강지곡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부안 실상사 | 신라 신문왕 | A는 B에 의해 건립되었다 | A ekc:founder B |
양녕대군 | 부안 실상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6.25 전쟁 | 부안 실상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원불교 | 박중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월인천강지곡 | 부안 실상사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689년 | 신라 신문왕이 부안 실상사를 건립하였다 |
1449년 | 월인천강지곡은 부안 실상사에 소장되어 있었다 |
1950년 | 6.25 전쟁 때 부안 실상사가 소실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5.636808 | 126.57626 | 부안 실상사가 위치하고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안승준·유학영, 「《월인천강지곡》의 부안 실상사 소장 경위와 그 전래 과정」, 『장서각』Vol 32,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48-74쪽.
- 웹자원
- 조용헌, "부안실상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용헌, "부안실상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