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분충서난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32번째 줄: 32번째 줄:
  
 
=='''내용'''==
 
=='''내용'''==
[[유정|유정(惟政)]]의 5대 법손(法孫)인 [[남붕|남붕(南鵬)]]이 전하여오던 [[유정]]의 유고를 이 시기에 새로 출간하였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題名)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261&cid=41708&categoryId=41711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유정|유정(惟政)]]의 5대 법손(法孫)인 [[남붕|남붕(南鵬)]]이 전해오던 [[유정]]의 유고를 새로 출간했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題名)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261&cid=41708&categoryId=41711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분충서난록』은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는 아니지만, 전시외교(戰時外交)의 허실, 그리고 적정의 탐지 등을 상세하게 기술한 점 등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공경대부를 비롯한 일반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견해와 [[유정]]의 폭 넓은 교유를 밝힐 있는 시사성을 주고 있다. [[유정]]이 남긴 문헌으로는 문집 4권과 『분충서난록』이 있을 따름인데, 문집에는 대개 시문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반면 『분충서난록』에는 비록 단편적인 언급이기는 하지만, [[유정]]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당시의 사회·민심·외교·경제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며, 가장 신빙성 있는 육전(陸戰)의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등에 소장되어 있다.<ref>정병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4890 분충서난록]",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분충서난록』은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 보고서는 아니지만, 전시외교(戰時外交)의 허실, 그리고 적정의 탐지 등을 상세하게 기술했다는 점 등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다. 또, 공경대부를 비롯한 일반 지식인의 불교에 대한 견해와 [[유정]]의 폭 넓은 교유를 엿볼 수 있다. [[유정]]이 남긴 문헌으로는 문집 네 권과 『분충서난록』이 있을 뿐인데, 문집에는 대개 시문이 수록되어 그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엿보기는 어렵지만 『분충서난록』에는 비록 단편적인 언급이기는 하나, [[유정]]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민심·외교·경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며, 가장 신빙성 있는 육전(陸戰)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ref>정병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4890 분충서난록]",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지식관계망'''==
+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
*'''사명대사 유정의 지식관계망'''
 +
<html>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D031/monk_samyeong2.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html>
 +
 
 +
===관계정보===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분충서난록]] || [[유정]] || A는 B가 저술하였다 ||
+
| [[분충서난록]] || [[유정]]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
| [[분충서난록]] || [[남붕]]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간행되었다]->인물
+
| [[분충서난록]] || [[남붕]]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
| [[분충서난록]] || [[신유한]]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간행되었다]->인물
+
| [[분충서난록]] || [[신유한]]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
| [[분충서난록]] || [[밀양 표충사]] || A는 B에 소장되었다 ||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소장되었다]->장소
+
| [[분충서난록]] || [[밀양 표충사]]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
| [[분충서난록]] || [[임진왜란]] || A는 B와 관련있다 ||
+
| [[분충서난록]] || [[임진왜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분충서난록]] || [[가토 기요마사]] || A는 B와 관련있다 ||
+
| [[분충서난록]] || [[가토 기요마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64번째 줄: 71번째 줄:
 
{{승탑비문 Top icon}}
 
{{승탑비문 Top icon}}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승탑/검토요청]]
+
[[분류:승탑/교열완료!]]

2017년 11월 24일 (금) 18:54 기준 최신판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대표명칭 분충서난록
한자표기 奮忠紓難錄
저자 유정(惟政)
편자 남붕(南鵬), 신유한(申維翰)
간행시기 1739년(영조 15)
간행지 밀양 표충사
시대 조선
수량 7권
판본 목판본
소장처 밀양 표충사



정의

임진왜란 때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의 일기와 상소문(上疏文), 기타 사적을 수록한 책.[1]

내용

유정(惟政)의 5대 법손(法孫)인 남붕(南鵬)이 전해오던 유정의 유고를 새로 출간했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題名)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2]

『분충서난록』은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 보고서는 아니지만, 전시외교(戰時外交)의 허실, 그리고 적정의 탐지 등을 상세하게 기술했다는 점 등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다. 또, 공경대부를 비롯한 일반 지식인의 불교에 대한 견해와 유정의 폭 넓은 교유를 엿볼 수 있다. 유정이 남긴 문헌으로는 문집 네 권과 『분충서난록』이 있을 뿐인데, 문집에는 대개 시문이 수록되어 그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엿보기는 어렵지만 『분충서난록』에는 비록 단편적인 언급이기는 하나, 유정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민심·외교·경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며, 가장 신빙성 있는 육전(陸戰)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3]

지식 관계망

  • 사명대사 유정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분충서난록 유정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분충서난록 남붕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분충서난록 신유한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분충서난록 밀양 표충사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분충서난록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분충서난록 가토 기요마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분충서난록",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정병조, "분충서난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분충서난록",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정병조, "분충서난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