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28번째 줄: | 28번째 줄: | ||
[[수선사|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로, 몽고 침입기에 [[수선사]]를 맡아 [[지눌|지눌(知訥)]]이 선양시킨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스승 [[혜심|혜심(慧諶)]]의 비를 세우고, [[혜심]]의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열람한 뒤 거기에 347칙(則)을 첨가하여 보완하는 등, 참신한 선풍을 잇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당대의 법왕으로 추앙받으면서 [[혼원|혼원(混元)]]·[[천영|천영(天英)]]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1252년 [[수선사]] 사주직(社主職)을 제4세 [[혼원]]에게 물려주고 입적하였다.<ref>김위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817 몽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문인 [[이규보|이규보(李奎報)]]와도 친분이 두터워, 그에게 [[정홍진|정이안(丁而安)]]의 흑죽도(黑竹圖)를 부탁하자 흑죽도를 보내면서 찬(撰)하였다는 글이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4385&cid=40942&categoryId=33382 몽여]",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수선사|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로, 몽고 침입기에 [[수선사]]를 맡아 [[지눌|지눌(知訥)]]이 선양시킨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스승 [[혜심|혜심(慧諶)]]의 비를 세우고, [[혜심]]의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열람한 뒤 거기에 347칙(則)을 첨가하여 보완하는 등, 참신한 선풍을 잇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당대의 법왕으로 추앙받으면서 [[혼원|혼원(混元)]]·[[천영|천영(天英)]]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1252년 [[수선사]] 사주직(社主職)을 제4세 [[혼원]]에게 물려주고 입적하였다.<ref>김위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817 몽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문인 [[이규보|이규보(李奎報)]]와도 친분이 두터워, 그에게 [[정홍진|정이안(丁而安)]]의 흑죽도(黑竹圖)를 부탁하자 흑죽도를 보내면서 찬(撰)하였다는 글이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4385&cid=40942&categoryId=33382 몽여]",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 ==''' | + | =='''지식 관계망'''== |
+ | *'''진각국사 혜심 지식관계망''' | ||
+ | <html> | ||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D024/monk_hyesim.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 | |||
+ | ===관계정보===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39번째 줄: | 47번째 줄: | ||
|- | |- | ||
| [[수선사]] || [[몽여]]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 | [[수선사]] || [[몽여]]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 ||
+ | |- | ||
+ | | [[몽여]] || [[순천 송광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
|} | |} | ||
− | ==''' | + | =='''주석'''== |
<references/> | <references/> | ||
2017년 11월 24일 (금) 15:57 기준 최신판
몽여(夢如) | |
대표명칭 | 몽여 |
---|---|
한자 | 夢如 |
생몰년 | ?-1252년 |
시호 | 청진국사(淸眞國師) |
정의
고려 중기의 승려.
내용
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로, 몽고 침입기에 수선사를 맡아 지눌(知訥)이 선양시킨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스승 혜심(慧諶)의 비를 세우고, 혜심의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열람한 뒤 거기에 347칙(則)을 첨가하여 보완하는 등, 참신한 선풍을 잇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당대의 법왕으로 추앙받으면서 혼원(混元)·천영(天英)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1252년 수선사 사주직(社主職)을 제4세 혼원에게 물려주고 입적하였다.[1] 문인 이규보(李奎報)와도 친분이 두터워, 그에게 정이안(丁而安)의 흑죽도(黑竹圖)를 부탁하자 흑죽도를 보내면서 찬(撰)하였다는 글이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2]
지식 관계망
- 진각국사 혜심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몽여 | 이규보 | A는 B와 교유하였다 | |
혜심 | 몽여 | A는 B의 스승이다 | |
몽여 | 혼원 | A는 B의 스승이다 | |
수선사 | 몽여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
몽여 | 순천 송광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