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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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의 제작 및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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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야외초상화이다. 초상화의 상단에는 "이 장군을 청담이 그리다(李將軍淸潭寫)."라는 제목이 있다. "청담"은 화가의 호로 여겨지며 지방화사 내지는 화승으로 추정된다.<br/>  
 
[[이삼]]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야외초상화이다. 초상화의 상단에는 "이 장군을 청담이 그리다(李將軍淸潭寫)."라는 제목이 있다. "청담"은 화가의 호로 여겨지며 지방화사 내지는 화승으로 추정된다.<br/>  
<이삼 초상>과 같은 야외 초상화는 중국의 경우 명, 청대 초상화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며 때로 배경은 산수화전문화가에게 맡기고 인물은 초상화가가 그리는 합작형식의 작품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조선에서 야외 초상화 형식은 <석천공한유도(石泉公閒遊圖)>나 <정약종 초상>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온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52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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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 초상>과 같은 야외 초상화는 중국의 경우 명, 청대 초상화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며 때로 배경은 산수화전문화가에게 맡기고 인물은 초상화가가 그리는 합작형식의 작품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조선에서 야외 초상화 형식은 <[[석천한유도|석천공한유도]](石泉公閒遊圖)>나 <[[정약종 초상]]>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온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52쪽.</ref><br/>
 
<이삼 초상>은 원래 [[이삼]] 장군 집안의 [[논산 백일헌 영당|백일헌]]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논산의 [[백제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하는 예가 극히 드문 야외 초상화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삼 초상>은 원래 [[이삼]] 장군 집안의 [[논산 백일헌 영당|백일헌]]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논산의 [[백제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하는 예가 극히 드문 야외 초상화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초상에 묘사된 모습===
강민첨 초상은 [[우안팔분면]]의 반신상으로서 우안의 형식은 고려시대 초상화의 특징이다. 의복은 고려시대 관리들이 일 할 때 입는 복장인 [[공복]]으로, [[복두]]를 하고 둥근 깃에 소매가 넓은 포를 입고 [[]]을 든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아래에는 호피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이모 당시인 18세기 후반의 초상화 형식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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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 초상>에서 [[이삼]][[전립]][[전복]]을 착용하고, 소나무를 배경으로 바위 위에 걸터 앉아있는데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 발을 왼발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등채]]를 잡고, 왼손은 청색 허리띠를 잡고 있다. 허리띠에는 장도가 달려있으며, 소나무 위에는 매 한 마리가 앉아있어 무인의 용맹함을 은유화하였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345쪽.</ref><br/>  
[[강민첨]]의 얼굴에서 표정은 경직된 느낌을 주며 큰 귀와 작은 입, 그리고 옆으로 찢어진 눈매 등이 과장되어 있다. 특히 귀는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의 크기여서 사실적이지 않은 표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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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의 얼굴은 무인다운 다부진 인상을 보여준다. 얼굴과 이목구비, 윤곽선은 적갈색 선으로 정의되어 있고 빰과 팔자주름 등에 약간의 음영을 가하고, 움푹 들어간 부위를 음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삼은 무인으로 자태는 두 눈이 언제나 빛났으며 , 다소 야윈 서생 같았으나 늠름한 용력은 당시에 따라갈 자가 없는 외유내강의 무인이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48쪽.</ref> 그림에서도 길고 마른 얼굴이지만 강인한 인상이 엿보인다. 분무공신화상소첩의 얼굴보다 좀 더 부드럽고 나이가 든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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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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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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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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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 03:13 기준 최신판


이삼 초상
배한철, "만화인가 초상화인가", 『매일경제』online, 작성일: 2016년 05월 18일.
한자명칭 李森 肖像
작가 미상
제작시기 18세기 초
소장처 백제군사박물관
유형 초상
크기(세로×가로) 62×40㎝


정의

조선시대 무신인 이삼(1677∼1735)의 모습을 그린 야외 초상화.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이삼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야외초상화이다. 초상화의 상단에는 "이 장군을 청담이 그리다(李將軍淸潭寫)."라는 제목이 있다. "청담"은 화가의 호로 여겨지며 지방화사 내지는 화승으로 추정된다.
<이삼 초상>과 같은 야외 초상화는 중국의 경우 명, 청대 초상화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며 때로 배경은 산수화전문화가에게 맡기고 인물은 초상화가가 그리는 합작형식의 작품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조선에서 야외 초상화 형식은 <석천공한유도(石泉公閒遊圖)>나 <정약종 초상>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온다.[1]
<이삼 초상>은 원래 이삼 장군 집안의 백일헌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논산의 백제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하는 예가 극히 드문 야외 초상화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이삼 초상>에서 이삼전립전복을 착용하고, 소나무를 배경으로 바위 위에 걸터 앉아있는데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 발을 왼발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등채를 잡고, 왼손은 청색 허리띠를 잡고 있다. 허리띠에는 장도가 달려있으며, 소나무 위에는 매 한 마리가 앉아있어 무인의 용맹함을 은유화하였다.[2]
이삼의 얼굴은 무인다운 다부진 인상을 보여준다. 얼굴과 이목구비, 윤곽선은 적갈색 선으로 정의되어 있고 빰과 팔자주름 등에 약간의 음영을 가하고, 움푹 들어간 부위를 음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삼은 무인으로 자태는 두 눈이 언제나 빛났으며 , 다소 야윈 서생 같았으나 늠름한 용력은 당시에 따라갈 자가 없는 외유내강의 무인이었다.[3] 그림에서도 길고 마른 얼굴이지만 강인한 인상이 엿보인다. 분무공신화상소첩의 얼굴보다 좀 더 부드럽고 나이가 든 인상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삼 초상 초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이삼 초상 이삼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이삼 초상 백제군사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전립 이삼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전복 이삼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등채 이삼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1923720 127.1813760 이삼 초상백제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52쪽.
  2.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345쪽.
  3.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48쪽.
  4. 배한철, "만화인가 초상화인가", 『매일경제』online, 작성일: 2016년 05월 18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2. 단행본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