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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명부인 왕의 유모(乳母)에게 내린 종1품 작호(爵號). <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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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명부인 왕의 유모(乳母)에게 내린 종1품 작호(爵號)이다. <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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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보부인]]중국 한(漢)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송나라에서는 [[진종|진종(眞宗)]]의 유모 유씨(劉氏)를 [[진국연수보성부인|진국연수보성부인(秦國延壽保聖夫人)]]이라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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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보부인]] 직함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처음 비롯되었다. 송나라에서는 [[진종|진종(眞宗)]]의 유모 유씨(劉氏)를 [[진국연수보성부인|진국연수보성부인(秦國延壽保聖夫人)]]이라 봉하였다.
 
조선 초기 세종도 이러한 중국 제도를 참작해 아보(阿保)의 공을 중히 여기고 법을 세우게 하였다. 이에 유모 이씨를 아름다운 이름을 써서 [[봉보부인]]이라 칭하고, 품계를 종2품으로 정하였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조선 초기 세종도 이러한 중국 제도를 참작해 아보(阿保)의 공을 중히 여기고 법을 세우게 하였다. 이에 유모 이씨를 아름다운 이름을 써서 [[봉보부인]]이라 칭하고, 품계를 종2품으로 정하였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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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도 봉보부인을 중히 여겨 세종 때의 예대로 해마다 쌀·콩 60석을 지급하고, 그 밖에도 토지와 노비를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예종은 봉보부인의 녹봉을 이전의 예대로 지급하고, 의전(衣纏)·선반(宣飯)은 정1품 빈(嬪)과 종1품 귀인(貴人)과 같은 예로 대우하였다. 또한 예종은 유모 홍씨의 족친 중 삼촌까지 양민(良民)이 되게 하였다. 성종은 봉보부인의 죽음에 사흘간 조회를 열지 않는 예우까지 하였고, 단종의 왕비를 간택하는 일에도 봉보부인은 종친부인들과 빈잉(嬪媵)·공주와 함께 참석하였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단종도 봉보부인을 중히 여겨 세종 때의 예대로 해마다 쌀·콩 60석을 지급하고, 그 밖에도 토지와 노비를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예종은 봉보부인의 녹봉을 이전의 예대로 지급하고, 의전(衣纏)·선반(宣飯)은 정1품 빈(嬪)과 종1품 귀인(貴人)과 같은 예로 대우하였다. 또한 예종은 유모 홍씨의 족친 중 삼촌까지 양민(良民)이 되게 하였다. 성종은 봉보부인의 죽음에 사흘간 조회를 열지 않는 예우까지 하였고, 단종의 왕비를 간택하는 일에도 봉보부인은 종친부인들과 빈잉(嬪媵)·공주와 함께 참석하였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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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우는 물질뿐만 아니라 신분까지도 높여주었으며, 모든 행사에도 예우로써 대하였다. 봉보부인은 세종 대에서 성종 대에 이르러 제도가 완비, 『[[경국대전]]』 외명부조에는 종1품으로 제정되었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그 대우는 물질뿐만 아니라 신분까지도 높여주었으며, 모든 행사에도 예우로써 대하였다. 봉보부인은 세종 대에서 성종 대에 이르러 제도가 완비, 『[[경국대전]]』 외명부조에는 종1품으로 제정되었다.<ref> 이영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871  봉보부인(奉保夫人)]",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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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 21:56 기준 최신판

봉보부인
(奉保夫人)
대표명칭 봉보부인
한자표기 奉保夫人
유형 제도


정의

조선시대 외명부인 왕의 유모(乳母)에게 내린 종1품 작호(爵號)이다. [1]

내용

유래

봉보부인 직함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처음 비롯되었다. 송나라에서는 진종(眞宗)의 유모 유씨(劉氏)를 진국연수보성부인(秦國延壽保聖夫人)이라 봉하였다. 조선 초기 세종도 이러한 중국 제도를 참작해 아보(阿保)의 공을 중히 여기고 법을 세우게 하였다. 이에 유모 이씨를 아름다운 이름을 써서 봉보부인이라 칭하고, 품계를 종2품으로 정하였다.[2]

지위와 대우

그 대우는 물질뿐만 아니라 신분까지도 높여주었으며, 모든 행사에도 예우로써 대하였다. 봉보부인은 세종 대에서 성종 대에 이르러 제도가 완비, 『경국대전』 외명부조에는 종1품으로 제정되었다.[3]

지식 관계망

  • 왕실 의복 반사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진국연수보성부인 봉보부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고려 문종 선비태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조선 세종 유모 이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봉보부인 왕실 의복 반사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경국대전 봉보부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이영숙, "봉보부인(奉保夫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영숙, "봉보부인(奉保夫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이영숙, "봉보부인(奉保夫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단행본
    • 이흥구, 손경순, 『한국궁중무용총서 . 3 , 무애무(無㝵舞)·아박무(牙拍舞)·무고(舞鼓)』, 보고사, 2009.
    • 송준영, 김미숙, 『정재무도홀기』, 조선대학교출판부, 1998
  • 논문
    • 한희숙, 「조선 전기 봉보부인(奉保夫人)의 역할과 지위」, 『朝鮮時代史學報』43, 조선시대사학회, 2007, 5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