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린 분재 편지 (해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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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le | + | [[file:한글팀_유정린_분재_편지_01.jpg|800xpx|center]] |
==원문과 해석문== | ==원문과 해석문== | ||
{{옛한글해독 | {{옛한글해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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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2=누의님 젼(前) 샹장(上狀) | |원문2=누의님 젼(前) 샹장(上狀) | ||
|원문3=근봉(謹封) | |원문3=근봉(謹封) | ||
− | |원문4=쳔군짓(海川郡地ㅅ)<ref> 쳔(海川): 해천군 이영 해남윤씨와 혼인관계가 있음.</ref> 사 갈 제 편지(便紙) 더니 | + | |원문4=쳔군짓(海川郡地ㅅ)<ref> 쳔(海川): 해천군 이영 해남윤씨와 혼인관계가 있음.</ref> 사 갈 제 편지(便紙) 더니 보오시니잇가 |
− | |원문5= | + | |원문5=요이 치외<ref> 치외: 추위.</ref> 하 심(甚)오니 긔운(氣運)이나 엇더오시니잇가 긔별(寄別) 모와 분별이다<ref> 분별이다: 걱정하나이다. 이른바 ‘분별’은 ‘걱정’(念慮)의 옛말.</ref> 동(同生)<ref> 동(同生): 발신자와 수신자의 죽은 동생 유정인(柳廷寅,1614~1662)을 말한다. 인조24년(1646) 式年試를 통해 생원 진사에 모두 입격하였다.</ref>은 완면(完眠)이 죽디 못와 담졔(禫祭)<ref> 담졔(禫祭): 初喪으로부터 27개월 뒤에 모시는 제사. 禫祀.</ref> 막 디내오니 새로이 망극(罔極)한 졍회(情懷) 어이 다 뎍오리잇가 |
− | + | |원문6=담졔 후(後)의 분(分財)<ref> 분(分財): 재산상속.</ref>오 동(同生)이 연고(緣故)이셔 오디 아니니 못 난편(難便) 일도 잇고 미(海美)<ref> 미(海美): 지명.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읍(海美邑).</ref> 손이 인(因)여 여 가지고 가려 매 즉시(卽時) 분(分財)오나 다 못디<ref> 못디: (상속자 형제가) 모이지.</ref> 못여시니 뎐디(田地) 노비(奴婢) 다 집됴(執籌)<ref> 집됴(執籌): 집주(執籌). 산가지(籌)를 잡는 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정확히 계산한다는 뜻. 여기서는 분재의 대상이 되는 노비 전답 등을 일일이 계산한다는 의미이다.</ref>하여 화이다<ref> 화이다: 나누었사옵나이다. 요즘 말 ‘나누다’의 옛말이 ‘호다’였다.</ref> | |
− | + | |원문7= 노복(奴僕)도 이젼(以前) 브리니<ref> 브리니: 부리는 이.</ref> 아오라<ref> 아오라: 아울러.</ref> 인여 실노(新奴) 신비(新婢)<ref> 실노(新奴) 신비(新婢): 成婚 당시 부부 각자가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받는 奴婢. 대부분 乳母와 같이 받는다. 분재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생애 최초의 재산이다. 부모 사망 시점에 행해지는 都分財 때에는 신보의 의 得後所生의 다과에 따라 형제간에 불균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도분재 당시 형제간에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본 편지에도 이 점을 염두를 두고 논지를 이어가고 있다.</ref> 셰고<ref> 셰고: 세고. 헤아리고. 여기서는 ‘셈하고’의 뜻이다.</ref> 실노비(新奴婢)밧긔가니 깃득(衿得)으로 셰고<ref> 실노비(新奴婢) 밧긔 가니 깃득(衿得)으로 셰고: ‘밧긔가니’은 노비 입장에서는 主家의 의무 밖에 | |
− | + | 있는 종이고 주인 입장에서 도망노비란 뜻이다. 실제 행해진 1664년 분재기에서는 衿得秩에 포함시켜 逃亡 노비로 기록하였다.</ref> 실노비(新奴婢) 못 갓 동(同生)의게 와 내고<ref> 실노비(新奴婢) 못 갓 동의게 와 내고: 신노비를 분급받지 못한 동생들에게 그에 상당하는 재산을 보충해주는 조항. 집안의 형편에 따라 신노비를 분재하지 못하거나 적게 분재받았을 경우 그 당사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었다. 都分財 시에 해당부분을 보 | |
− | + | 충해주어 ‘平分’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와 내고는 채워 내고의 뜻.</ref> 분깃(分衿)<ref> 분깃(分衿): 분재당사자가 각자의 몫을 나눔.</ref>의 노미약(老迷弱)<ref> 노미약(老迷弱): 나이 따른 노비의 분류 방식. 분재 시에는 통상 老壯弱, 혹은 老迷壯弱으로 분류한다. 弱은 16세 이하 壯은 16~59세 老는 60세 이상이다. 迷는 어리버리한, 즉 정신적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어 그 가치가 일반 노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노비를 지칭한다.</ref> 병(幷)<ref> 병(幷): 아울러. 합하여.</ref>여 닐곱식 화거니와 왼 나식 나고<ref> 왼 나식 나고: 왼는 다른 곳. 밖. 여기서는 ‘먼 곳으로 달아난 도망한 노비’.</ref> 뎐디(田地)도 밧(田)엿쇄가리(六日耕)식<ref> 엿쇄 가리식: 6日耕 씩.</ref>과 논(畓) 닷말딕이(五斗落只) 식<ref> 닷 말딕이식: 5斗落只 씩.</ref> 화거니와 그 논밧사<ref> 논밧사: 사서? 값으로 쳐서?</ref> 강홰(江華)<ref> 강홰(江華): 지명. 경기도 강화군(江華郡).</ref> 논밧과 양(楊洲)<ref> 양(楊洲): 지명. 경기도 양주군(楊洲郡).</ref> 증조묘(曾祖墓) 뎐답(田畓)과 튱(忠州)<ref> 튱(忠州): 지명.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ref> 밧(田) 나잘가리(半日耕)<ref> 나잘가리: 나절갈이. 반나절에 갈 수 있는 논밭의 넓이를 뜻하는 말이다.</ref>과 새순막묘(新炭幕墓)<ref> 새순막묘: 묘명(墓名). ‘새순막’은 곧 ‘신탄막’(新炭幕)으로서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新山里)에 있는 지명으로서, 또한 ‘새술막’이라 이른다.</ref>과 하뎐(下田) 나잘가리(半日耕)과 검암(劒岩)<ref> 검암: 지명. 검암(劍巖). 칼바우.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토계리(土界里)의 바위 이름. 여기서는 그 인근 일대를 뜻한다. 여기는 본디 연풍현(延豊縣)의 일부였으나, 1914년에 괴산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고,1963년에 다시 중원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다.</ref>것 합(合)여 그리<ref> 그리: 거기로. ‘누님네 몫으로’의 뜻이다.</ref> 가이다 | |
− | | | + | |원문8=그런 듕(中)의 나 이젼의 죵(奴)을 주셔(注書)<ref> 주셔(注書): 서기(書記). 주서(注書)는 조선시대에 승정원의 기록을 담당한 정7품의 관직을 가리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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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재의 대상이 되는 노비 전답 등을 일일이 계산한다는 의미이다.</ref>하여 화이다<ref> 화이다: 나누었사옵나이다. 요즘 말 ‘나누다’의 옛말이 ‘호다’였다.</ref> 노복(奴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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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都分財 때에는 신보의 의 得後所生의 다과에 따라 형제간에 불균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 ||
− | 도분재 당시 형제간에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본 편지에도 이 점을 염두를 두고 논지를 이어가고 | ||
− | 있다.</ref> 셰고<ref> 셰고: 세고. 헤아리고. 여기서는 ‘셈하고’의 뜻이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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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종이고 주인 입장에서 도망노비란 뜻이다. 실제 행해진 1664년 분재기에서는 衿得秩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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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산을 보충해주는 조항. 집안의 형편에 따라 신노비를 분재하지 못하거나 적게 분재받았을 경우 그 | ||
− | 당사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었다. 都分財 시에 해당부분을 보 | ||
− | 충해주어 ‘平分’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와 내고는 채워 내고의 뜻.</ref> 분깃(分衿)<ref> 분깃(分衿): 분재당사자가 각자의 몫을 나눔.</ref>의 노미약(老迷弱)<ref> 노미약(老迷弱): 나이 따른 노비의 분류 방식. 분재 시에는 통상 老壯弱, 혹은 老迷壯弱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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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지명으로서, 또한 ‘새술막’이라 이른다.</ref>과 하뎐(下田) 나잘가리(半日耕)과 검암(劒岩)<ref> 검암: 지명. 검암(劍巖). 칼바우.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토계리(土界里)의 바위 이름. 여기서는 그 인근 | ||
− | 일대를 뜻한다. 여기는 본디 연풍현(延豊縣)의 일부였으나, 1914년에 괴산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고, | ||
− | 1963년에 다시 중원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다.</ref>것 합(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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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집안일에 관한 기록을 맡아보는 ‘서기’(書記)의 뜻으로 쓰였다.</ref>로 브리다가 주겨리고<ref> 주겨 리고: 죽여 버리고.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의 뜻이다.</ref> 다 나가고<ref> 다 나가고: 다 달아나고. 유정린이 그의 누이 앞으로 해남윤씨가에 보내온 화회문기 「康熙三年甲辰 | 바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집안일에 관한 기록을 맡아보는 ‘서기’(書記)의 뜻으로 쓰였다.</ref>로 브리다가 주겨리고<ref> 주겨 리고: 죽여 버리고.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의 뜻이다.</ref> 다 나가고<ref> 다 나가고: 다 달아나고. 유정린이 그의 누이 앞으로 해남윤씨가에 보내온 화회문기 「康熙三年甲辰 | ||
− | 十二月二十二日同生和會文記」를 보건대, 그의 ‘깃득’에서 이른바 친득(親得)으로 받은 노비는 모두 다 | + | 十二月二十二日同生和會文記」를 보건대, 그의 ‘깃득’에서 이른바 친득(親得)으로 받은 노비는 모두 다 섯이었는데, 이 가운데 넷은 달아난 채로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죽어 없었다.</ref> 거 긔(己有ㅣ)<ref> 긔(己有ㅣ): 자기의 소유. 또는 자기가 소유한 물건.</ref> 주신거시라 분(分財)예 셰매 깃득(衿得)의 나히 와고 득<ref> 득: 가뜩. 가뜩이나.</ref> 사쇼(些少) 죵의 대젼(大典) 법(法)으로 노라 고<ref> 대젼법(大典法)으로 노라 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라 분재함. 경국대전에는 자녀간 均分의 원칙과 함께 ‘조상 제사를 받드는 자녀에게는 1/5을 더해 준다.’라고 하였다. “父母奴婢, 承重子, |
− | 섯이었는데, 이 가운데 넷은 달아난 채로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죽어 없었다.</ref> 거 긔(己有ㅣ)<ref> 긔(己有ㅣ): 자기의 소유. 또는 자기가 소유한 물건.</ref> | + | 加五分之一. 如衆子女各給五口, 承重子給六口之類.”(經國大典, 刑典 私賤.)</ref> 봉죠(奉祀條)<ref> 봉죠(奉祀條): 조상 제사를 받드는 자녀에게 부모 유산을 다른 자녀보다 더 주는 법조항. 승중조(承重條). 주사조(主祀條).</ref>의 죵 둘 밧(田)가리(一日耕)<ref> 가리: 1日耕. 하루 낮 동안에 갈 수 있는 밭의 넓이. 날갈이.</ref>과 논 서말직이(三斗落只)<ref> 말직이: 斗落只. 볍씨 한 말의 모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ref> 내오니 당(祠堂) 졔(祭祀) <ref> : 잦은데. 자주 제(祭)를 올려야 하는데.</ref>민망(憫惘)여이다 분시(分財時)예 불균(不均) 일 이오나<ref>이오나: 있사오나.</ref> 글노 내내 오리잇가<ref> 오리잇가: 다투오리까.</ref> 저<ref> 저 : 화회분재 당사자안 同姓.</ref> 쟈 대로 엿이다 |
− | + | |원문9= 대강 왼 거시야<ref> 왼 거시야: 먼 곳으로 도망쳐 달아난 것이야.</ref> 더옥 사쇼(些少)니 니리잇가 검암(劍岩) 거시 도시(都是) 가경뎐(加耕田)<ref> 가경뎐(加耕田): 새로 개간하여 아직 토지 대장에도 오르지 않은 논밭.</ref>이니 아도 그것 지어 제 귀실(口實)<ref> 귀실: 구실.</ref>도 길히 업다 니민망여 이다 예 잇 누의 동도 이것 가지고 돌님졔(輪祭)<ref> 돌님졔(輪祭): 여러 형제가 차례를 정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지내는 제사. 또는, 그런 제사 방식.</ref>도 길 업니 종가(宗家)의셔 졔(祭祀)나 라’ 종(奴)도 외방(外方) 거실(居室)분 아냐 어린 거시<ref> 어린 거시 : 어린 노비. 弱노비.</ref> 만코 뎐디(田地) 더욱 졔 귀실(口實)도 셰<ref> 셰: 것이. ‘’의 주격형 ‘’(→씨)를 ‘셰’로 적은 것이다.</ref>업니 내 집 나 모양 못고(不成模樣) 님자<ref> 님자: 임자?. 본인의 부인, 妻家.</ref>도 갓가 이 이시니 내 어이 리잇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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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원문10=누의님 거번(去番) 편지예 긔별신 ‘내게 오 뎐민(田民)<ref> 뎐민(田民): 전답과 노비.</ref>을 가지고 돌님졔(輪祭)나 라.’ 여 겨시니 누의님겨오셔 쳘니(千里)예 겨오시니 다 누의 동과 다와 긔별신 대로 오려니와 한식(寒食)브터 졔(祭)을 돌니오니 형뎨(兄弟) 례로 오며 조부모(祖父母)님 묘졔(墓祭)<ref> 묘졔(墓祭):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ref> 나(羅州ㅣ)<ref> 나(羅州ㅣ): 지명.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ref> 누의님 (宅)이오 부모(父母)님 묘졔 누의님 이오니 날을 라 시거단 한식(寒食)이 머디 아니여시니 다시 시<ref> 시: 자세히.</ref> 긔별쇼셔 화회문긔(和會文記) 일홈을 밧노라 면<ref> 일홈을 밧노라 면: 일홈은 이름. 하회문기 안에 ㅂ누재 당사자의 서명을 받고자 하면.</ref> 더딀 거시니 몬져 뎍어 보내이다 졍회(情懷) 무귱(無窮)오나 지리(支離)와 잠<ref> 잠: 좀. 조금. ‘좀’에 해당하는 사투리.</ref> 아마도 긔운(氣運) 편안(便安)오심 쳔만(千萬) 바라 | |
− | 加五分之一. 如衆子女各給五口, 承重子給六口之類.”(經國大典, 刑典 私賤.)</ref> 봉죠(奉祀條)<ref> 봉죠(奉祀條): 조상 제사를 받드는 자녀에게 부모 유산을 다른 자녀보다 더 주는 법조항. 승중조 | + | |
− | (承重條). 주사조(主祀條).</ref>의 죵 둘 밧(田) | + | |원문11=갑진(甲辰)<ref> 갑진(甲辰): 1664년 현종 5년.</ref> 납월(臘月) 념뉵일(念六日)<ref> 념뉵일(念六日): 26일.</ref> 동(同生) 뎡닌(廷麟)<ref> 뎡닌: 인명. 윤인미의 처남 유정린(柳廷麟)이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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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해석문2=누님 앞에 올리는 글월 | |
− | + | |해석문4=해남(海州) 군지(郡地) 사람 갈 적에 편지 하였더니, 보셨으니까? | |
− | | | + | |해석문5=요사이 추위는 너무 심하오니, 기운이나 어떠하오시니까? 기별 모르와 걱정하나이다. 동생은 [편안히] 아주 자는 듯이 죽지 못하여, 담제(禫祭)를 마지막 지내오니, 새로이 [생기는] 가없는 [슬픈] 마음을 어이 다 적으오리까? |
− | + | |해석문6=담제를 지낸 뒤에 분재(分財)를 하오되, 동생들이 [미처 오지 못할] 일이 있어 [더러] 오지 아니하니 [분재를] 못할 듯하되, [다시 또 모이게 하는 데서] 불편한 일도 있고 [또한 멀리] 해미(海美)[에서 온] 손이 [거리가 먼 것으로] 말미암아 [되도록이면 이번 기회에] 하여가지고 가려 하매, [담제를 지내고] 곧바로 [마지못해] 분재하오나, [형제가] 다 모이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전지(田地)와 노비(奴婢)를 다 억지로 거두어 들여 나누었사옵나이다. | |
− | + | |해석문7=[이를테면] 노복(奴僕)도 이전에 부리던 이를 아울러 신노(新奴)와 신비(新婢)를 셈하고, 신노비(新奴婢)로서 밖으로 도망쳐 달아난 이는 [이번에 다시] 나누어 가질 바의 몫으로 셈하고,[아직 혼인을 아니하여] 신노비를 못 갖는 동생들에게는 [미리 그 몫을] 채워 내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로써 이번에] 저마다 몫으로 가질 놈이 얼추 아울러 일곱씩 나뉘었거니와 [여기에]먼 곳으로 달아난 놈들을 하나씩 보태었고, 전지도 밭 엿새 갈이씩과 논 닷 마지기씩 나누었거니와 그[와 같이 몫을 지은 크기의] 논밭을 [여기에 맞먹는 값으로] 쳐서 강화(江華)의 논밭과 양주(楊洲) 증조부 묘소[에 딸린] 전답과 충주(忠州) 밭 나절갈이와 새순막(新炭幕) 묘소[에딸린] 하전(下田) 나절갈이와 검암(劒巖)[에 있는] 것을 합하여 [누님의 몫으로] 그리 갔사옵나이다. | |
− | + | |해석문8=그러는 가운데 나는 이전의 종을 서기(書記)로 부리다가 죽여 버리고 [남은 놈들은 또]다 달아나고 한 것을 [어버이께서 일찍이] 내 차지로 주신 것이라 [이렇게 빈 머릿수를 가지고] 분재[하는 자리]에 [이미 가진 몫으로] 셈하매, 내가 가질 몫으로는 [기껏해야] 하나가 왔사옵고, 가뜩이나 적은 종[을 차지한 마당]에 [더구나] ‘대전(大典)에 있는 법으로 하노라.’ 하고서 [내가] 조상 제사를 받드는 몫으로는 [그저] 종 둘과 밭 하루갈이와 논 세 마지기를 내오니, 사당(祠堂) 제사(祭祀)는 잦은 것인데, [사정이] 딱하오이다. 분재할 때에 고르게 되지 못한일이 [비록] 있사오나, [그렇다고 해서] 그로써 내내 다투오리까? 저희 하자 하는 대로 하였나이다. | |
− | + | |해석문9=얼추 [보아도] 먼 곳으로 달아난 것이야 [앞으로 찾아낸다고 해도 찾아낸 사람에게 일정한 값을 쳐 주어야 하는 까닭에] 더욱 [몫이] 적으니, [이러한 불평을 구차히 다] 이르리이까?[다만 누님 몫으로 가는 바로서] 검암에 있는 것이 도무지 가경전(加耕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아마도 그것 지어 [보았자] 제 구실도 할 길이 없다고 하니, [누님의 사정도] 딱하게 여겨지오이다. 여기 있는 누이 동생들도 이것들을 가지고[서는] 돌림제사도 할 수 없으니, ‘종가(宗家)에서 [가지는 대신에] 제사나 [맡아서] 하라.’ 하되, 종도 외지(外地)의 것일 뿐 아니라[아직] 어린 것이 많고, 전지는 더욱 제 구실도 할 것이 없으니, [새로 오는 종이 여럿이라고했댔자 일찍이] 내 집[에서 부리던] 하나만도 못하고 [게다가 그들을 본디 가졌던] 임자네도가까이 있으니, 내 어이 하리까? | |
− | + | |해석문10=누님 접때 편지에 기별하신 데 [이르시기를] ‘네게 [몫으로]오는 전민(佃民)을 가지고 돌림제사나 [지내는 데 쓰도록] 하라.’ 하여 계시니, 누님께서는 천리[밖]에 계시오니, 다른 누이 동생들과 달라서 기별하신 대로 하오려니와, 한식(寒食)으로부터제(祭)를 돌리오니, [맏이에 따른] 형제 차례로 하오며, [따라서] 조부모님 묘제(墓祭)는 나주(羅州) 누님 댁이요, 부모님 묘제는 누님 댁이오니, [이와 같이 누님께서 맡을 제사를] 나더러하라 하시기로, 한식이 멀지 아니하였으니, [누님께서 어찌 하실 것인지] 다시 자세히 기별하소서. 화회문기(和會文記)는, [형제 모두의] 이름들을 [낱낱 다] 받노라 하면 더딜 것이니, [나를 비롯해서 여러 아우들의 이름과 수결(手決)을] 먼저 적어 보내나이다. 마음에 품은 바는 그지없사오나, 지루해서 좀…… 아무쪼록 기운 편안하사오심 거듭거듭 바라옵. | |
− | + | |해석문11=갑진년 섣달 이십육일, 동생 정린(廷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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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주석== | ||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references/></span> |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references/></span> | ||
− | [[분류:한글고문서]][[분류:해독자료 | + | [[분류:한글고문서]][[분류:해독자료]] |
2017년 11월 21일 (화) 21:52 기준 최신판
본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및 2016~2017년에 진행한 금요강독회 중 유정린 분재 편지 (해독) 관련 '발표내용'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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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尹正字)[1] (宅) | |
누의님 젼(前) 샹장(上狀) | 누님 앞에 올리는 글월 |
근봉(謹封) | |
쳔군짓(海川郡地ㅅ)[2] 사 갈 제 편지(便紙) 더니 보오시니잇가 | 해남(海州) 군지(郡地) 사람 갈 적에 편지 하였더니, 보셨으니까? |
요이 치외[3] 하 심(甚)오니 긔운(氣運)이나 엇더오시니잇가 긔별(寄別) 모와 분별이다[4] 동(同生)[5]은 완면(完眠)이 죽디 못와 담졔(禫祭)[6] 막 디내오니 새로이 망극(罔極)한 졍회(情懷) 어이 다 뎍오리잇가 | 요사이 추위는 너무 심하오니, 기운이나 어떠하오시니까? 기별 모르와 걱정하나이다. 동생은 [편안히] 아주 자는 듯이 죽지 못하여, 담제(禫祭)를 마지막 지내오니, 새로이 [생기는] 가없는 [슬픈] 마음을 어이 다 적으오리까? |
담졔 후(後)의 분(分財)[7]오 동(同生)이 연고(緣故)이셔 오디 아니니 못 난편(難便) 일도 잇고 미(海美)[8] 손이 인(因)여 여 가지고 가려 매 즉시(卽時) 분(分財)오나 다 못디[9] 못여시니 뎐디(田地) 노비(奴婢) 다 집됴(執籌)[10]하여 화이다[11] | 담제를 지낸 뒤에 분재(分財)를 하오되, 동생들이 [미처 오지 못할] 일이 있어 [더러] 오지 아니하니 [분재를] 못할 듯하되, [다시 또 모이게 하는 데서] 불편한 일도 있고 [또한 멀리] 해미(海美)[에서 온] 손이 [거리가 먼 것으로] 말미암아 [되도록이면 이번 기회에] 하여가지고 가려 하매, [담제를 지내고] 곧바로 [마지못해] 분재하오나, [형제가] 다 모이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전지(田地)와 노비(奴婢)를 다 억지로 거두어 들여 나누었사옵나이다. |
노복(奴僕)도 이젼(以前) 브리니[12] 아오라[13] 인여 실노(新奴) 신비(新婢)[14] 셰고[15] 실노비(新奴婢)밧긔가니 깃득(衿得)으로 셰고[16] 실노비(新奴婢) 못 갓 동(同生)의게 와 내고[17] 분깃(分衿)[18]의 노미약(老迷弱)[19] 병(幷)[20]여 닐곱식 화거니와 왼 나식 나고[21] 뎐디(田地)도 밧(田)엿쇄가리(六日耕)식[22]과 논(畓) 닷말딕이(五斗落只) 식[23] 화거니와 그 논밧사[24] 강홰(江華)[25] 논밧과 양(楊洲)[26] 증조묘(曾祖墓) 뎐답(田畓)과 튱(忠州)[27] 밧(田) 나잘가리(半日耕)[28]과 새순막묘(新炭幕墓)[29]과 하뎐(下田) 나잘가리(半日耕)과 검암(劒岩)[30]것 합(合)여 그리[31] 가이다 | [이를테면] 노복(奴僕)도 이전에 부리던 이를 아울러 신노(新奴)와 신비(新婢)를 셈하고, 신노비(新奴婢)로서 밖으로 도망쳐 달아난 이는 [이번에 다시] 나누어 가질 바의 몫으로 셈하고,[아직 혼인을 아니하여] 신노비를 못 갖는 동생들에게는 [미리 그 몫을] 채워 내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로써 이번에] 저마다 몫으로 가질 놈이 얼추 아울러 일곱씩 나뉘었거니와 [여기에]먼 곳으로 달아난 놈들을 하나씩 보태었고, 전지도 밭 엿새 갈이씩과 논 닷 마지기씩 나누었거니와 그[와 같이 몫을 지은 크기의] 논밭을 [여기에 맞먹는 값으로] 쳐서 강화(江華)의 논밭과 양주(楊洲) 증조부 묘소[에 딸린] 전답과 충주(忠州) 밭 나절갈이와 새순막(新炭幕) 묘소[에딸린] 하전(下田) 나절갈이와 검암(劒巖)[에 있는] 것을 합하여 [누님의 몫으로] 그리 갔사옵나이다. |
그런 듕(中)의 나 이젼의 죵(奴)을 주셔(注書)[32]로 브리다가 주겨리고[33] 다 나가고[34] 거 긔(己有ㅣ)[35] 주신거시라 분(分財)예 셰매 깃득(衿得)의 나히 와고 득[36] 사쇼(些少) 죵의 대젼(大典) 법(法)으로 노라 고[37] 봉죠(奉祀條)[38]의 죵 둘 밧(田)가리(一日耕)[39]과 논 서말직이(三斗落只)[40] 내오니 당(祠堂) 졔(祭祀) [41]민망(憫惘)여이다 분시(分財時)예 불균(不均) 일 이오나[42] 글노 내내 오리잇가[43] 저[44] 쟈 대로 엿이다 | 그러는 가운데 나는 이전의 종을 서기(書記)로 부리다가 죽여 버리고 [남은 놈들은 또]다 달아나고 한 것을 [어버이께서 일찍이] 내 차지로 주신 것이라 [이렇게 빈 머릿수를 가지고] 분재[하는 자리]에 [이미 가진 몫으로] 셈하매, 내가 가질 몫으로는 [기껏해야] 하나가 왔사옵고, 가뜩이나 적은 종[을 차지한 마당]에 [더구나] ‘대전(大典)에 있는 법으로 하노라.’ 하고서 [내가] 조상 제사를 받드는 몫으로는 [그저] 종 둘과 밭 하루갈이와 논 세 마지기를 내오니, 사당(祠堂) 제사(祭祀)는 잦은 것인데, [사정이] 딱하오이다. 분재할 때에 고르게 되지 못한일이 [비록] 있사오나, [그렇다고 해서] 그로써 내내 다투오리까? 저희 하자 하는 대로 하였나이다. |
대강 왼 거시야[45] 더옥 사쇼(些少)니 니리잇가 검암(劍岩) 거시 도시(都是) 가경뎐(加耕田)[46]이니 아도 그것 지어 제 귀실(口實)[47]도 길히 업다 니민망여 이다 예 잇 누의 동도 이것 가지고 돌님졔(輪祭)[48]도 길 업니 종가(宗家)의셔 졔(祭祀)나 라’ 종(奴)도 외방(外方) 거실(居室)분 아냐 어린 거시[49] 만코 뎐디(田地) 더욱 졔 귀실(口實)도 셰[50]업니 내 집 나 모양 못고(不成模樣) 님자[51]도 갓가 이 이시니 내 어이 리잇가 | 얼추 [보아도] 먼 곳으로 달아난 것이야 [앞으로 찾아낸다고 해도 찾아낸 사람에게 일정한 값을 쳐 주어야 하는 까닭에] 더욱 [몫이] 적으니, [이러한 불평을 구차히 다] 이르리이까?[다만 누님 몫으로 가는 바로서] 검암에 있는 것이 도무지 가경전(加耕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아마도 그것 지어 [보았자] 제 구실도 할 길이 없다고 하니, [누님의 사정도] 딱하게 여겨지오이다. 여기 있는 누이 동생들도 이것들을 가지고[서는] 돌림제사도 할 수 없으니, ‘종가(宗家)에서 [가지는 대신에] 제사나 [맡아서] 하라.’ 하되, 종도 외지(外地)의 것일 뿐 아니라[아직] 어린 것이 많고, 전지는 더욱 제 구실도 할 것이 없으니, [새로 오는 종이 여럿이라고했댔자 일찍이] 내 집[에서 부리던] 하나만도 못하고 [게다가 그들을 본디 가졌던] 임자네도가까이 있으니, 내 어이 하리까? |
누의님 거번(去番) 편지예 긔별신 ‘내게 오 뎐민(田民)[52]을 가지고 돌님졔(輪祭)나 라.’ 여 겨시니 누의님겨오셔 쳘니(千里)예 겨오시니 다 누의 동과 다와 긔별신 대로 오려니와 한식(寒食)브터 졔(祭)을 돌니오니 형뎨(兄弟) 례로 오며 조부모(祖父母)님 묘졔(墓祭)[53] 나(羅州ㅣ)[54] 누의님 (宅)이오 부모(父母)님 묘졔 누의님 이오니 날을 라 시거단 한식(寒食)이 머디 아니여시니 다시 시[55] 긔별쇼셔 화회문긔(和會文記) 일홈을 밧노라 면[56] 더딀 거시니 몬져 뎍어 보내이다 졍회(情懷) 무귱(無窮)오나 지리(支離)와 잠[57] 아마도 긔운(氣運) 편안(便安)오심 쳔만(千萬) 바라 | 누님 접때 편지에 기별하신 데 [이르시기를] ‘네게 [몫으로]오는 전민(佃民)을 가지고 돌림제사나 [지내는 데 쓰도록] 하라.’ 하여 계시니, 누님께서는 천리[밖]에 계시오니, 다른 누이 동생들과 달라서 기별하신 대로 하오려니와, 한식(寒食)으로부터제(祭)를 돌리오니, [맏이에 따른] 형제 차례로 하오며, [따라서] 조부모님 묘제(墓祭)는 나주(羅州) 누님 댁이요, 부모님 묘제는 누님 댁이오니, [이와 같이 누님께서 맡을 제사를] 나더러하라 하시기로, 한식이 멀지 아니하였으니, [누님께서 어찌 하실 것인지] 다시 자세히 기별하소서. 화회문기(和會文記)는, [형제 모두의] 이름들을 [낱낱 다] 받노라 하면 더딜 것이니, [나를 비롯해서 여러 아우들의 이름과 수결(手決)을] 먼저 적어 보내나이다. 마음에 품은 바는 그지없사오나, 지루해서 좀…… 아무쪼록 기운 편안하사오심 거듭거듭 바라옵. |
갑진(甲辰)[58] 납월(臘月) 념뉵일(念六日)[59] 동(同生) 뎡닌(廷麟)[60] | 갑진년 섣달 이십육일, 동생 정린(廷麟). |
주석
- ↑ 윤정(尹正字): 수신자 전주유씨의 남편 윤인미(尹仁美, 1607~1674) 는 尹善道의 아들로 일찌기 문과에 급제, 승문원 正字를 지냈다.
- ↑ 쳔(海川): 해천군 이영 해남윤씨와 혼인관계가 있음.
- ↑ 치외: 추위.
- ↑ 분별이다: 걱정하나이다. 이른바 ‘분별’은 ‘걱정’(念慮)의 옛말.
- ↑ 동(同生): 발신자와 수신자의 죽은 동생 유정인(柳廷寅,1614~1662)을 말한다. 인조24년(1646) 式年試를 통해 생원 진사에 모두 입격하였다.
- ↑ 담졔(禫祭): 初喪으로부터 27개월 뒤에 모시는 제사. 禫祀.
- ↑ 분(分財): 재산상속.
- ↑ 미(海美): 지명.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읍(海美邑).
- ↑ 못디: (상속자 형제가) 모이지.
- ↑ 집됴(執籌): 집주(執籌). 산가지(籌)를 잡는 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정확히 계산한다는 뜻. 여기서는 분재의 대상이 되는 노비 전답 등을 일일이 계산한다는 의미이다.
- ↑ 화이다: 나누었사옵나이다. 요즘 말 ‘나누다’의 옛말이 ‘호다’였다.
- ↑ 브리니: 부리는 이.
- ↑ 아오라: 아울러.
- ↑ 실노(新奴) 신비(新婢): 成婚 당시 부부 각자가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받는 奴婢. 대부분 乳母와 같이 받는다. 분재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생애 최초의 재산이다. 부모 사망 시점에 행해지는 都分財 때에는 신보의 의 得後所生의 다과에 따라 형제간에 불균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도분재 당시 형제간에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본 편지에도 이 점을 염두를 두고 논지를 이어가고 있다.
- ↑ 셰고: 세고. 헤아리고. 여기서는 ‘셈하고’의 뜻이다.
- ↑ 실노비(新奴婢) 밧긔 가니 깃득(衿得)으로 셰고: ‘밧긔가니’은 노비 입장에서는 主家의 의무 밖에 있는 종이고 주인 입장에서 도망노비란 뜻이다. 실제 행해진 1664년 분재기에서는 衿得秩에 포함시켜 逃亡 노비로 기록하였다.
- ↑ 실노비(新奴婢) 못 갓 동의게 와 내고: 신노비를 분급받지 못한 동생들에게 그에 상당하는 재산을 보충해주는 조항. 집안의 형편에 따라 신노비를 분재하지 못하거나 적게 분재받았을 경우 그 당사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었다. 都分財 시에 해당부분을 보 충해주어 ‘平分’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와 내고는 채워 내고의 뜻.
- ↑ 분깃(分衿): 분재당사자가 각자의 몫을 나눔.
- ↑ 노미약(老迷弱): 나이 따른 노비의 분류 방식. 분재 시에는 통상 老壯弱, 혹은 老迷壯弱으로 분류한다. 弱은 16세 이하 壯은 16~59세 老는 60세 이상이다. 迷는 어리버리한, 즉 정신적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어 그 가치가 일반 노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노비를 지칭한다.
- ↑ 병(幷): 아울러. 합하여.
- ↑ 왼 나식 나고: 왼는 다른 곳. 밖. 여기서는 ‘먼 곳으로 달아난 도망한 노비’.
- ↑ 엿쇄 가리식: 6日耕 씩.
- ↑ 닷 말딕이식: 5斗落只 씩.
- ↑ 논밧사: 사서? 값으로 쳐서?
- ↑ 강홰(江華): 지명.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 ↑ 양(楊洲): 지명. 경기도 양주군(楊洲郡).
- ↑ 튱(忠州): 지명.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 ↑ 나잘가리: 나절갈이. 반나절에 갈 수 있는 논밭의 넓이를 뜻하는 말이다.
- ↑ 새순막묘: 묘명(墓名). ‘새순막’은 곧 ‘신탄막’(新炭幕)으로서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新山里)에 있는 지명으로서, 또한 ‘새술막’이라 이른다.
- ↑ 검암: 지명. 검암(劍巖). 칼바우.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토계리(土界里)의 바위 이름. 여기서는 그 인근 일대를 뜻한다. 여기는 본디 연풍현(延豊縣)의 일부였으나, 1914년에 괴산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고,1963년에 다시 중원군 상모면으로 변경되었다.
- ↑ 그리: 거기로. ‘누님네 몫으로’의 뜻이다.
- ↑ 주셔(注書): 서기(書記). 주서(注書)는 조선시대에 승정원의 기록을 담당한 정7품의 관직을 가리키는 바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집안일에 관한 기록을 맡아보는 ‘서기’(書記)의 뜻으로 쓰였다.
- ↑ 주겨 리고: 죽여 버리고.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의 뜻이다.
- ↑ 다 나가고: 다 달아나고. 유정린이 그의 누이 앞으로 해남윤씨가에 보내온 화회문기 「康熙三年甲辰 十二月二十二日同生和會文記」를 보건대, 그의 ‘깃득’에서 이른바 친득(親得)으로 받은 노비는 모두 다 섯이었는데, 이 가운데 넷은 달아난 채로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죽어 없었다.
- ↑ 긔(己有ㅣ): 자기의 소유. 또는 자기가 소유한 물건.
- ↑ 득: 가뜩. 가뜩이나.
- ↑ 대젼법(大典法)으로 노라 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라 분재함. 경국대전에는 자녀간 均分의 원칙과 함께 ‘조상 제사를 받드는 자녀에게는 1/5을 더해 준다.’라고 하였다. “父母奴婢, 承重子, 加五分之一. 如衆子女各給五口, 承重子給六口之類.”(經國大典, 刑典 私賤.)
- ↑ 봉죠(奉祀條): 조상 제사를 받드는 자녀에게 부모 유산을 다른 자녀보다 더 주는 법조항. 승중조(承重條). 주사조(主祀條).
- ↑ 가리: 1日耕. 하루 낮 동안에 갈 수 있는 밭의 넓이. 날갈이.
- ↑ 말직이: 斗落只. 볍씨 한 말의 모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
- ↑ : 잦은데. 자주 제(祭)를 올려야 하는데.
- ↑ 이오나: 있사오나.
- ↑ 오리잇가: 다투오리까.
- ↑ 저 : 화회분재 당사자안 同姓.
- ↑ 왼 거시야: 먼 곳으로 도망쳐 달아난 것이야.
- ↑ 가경뎐(加耕田): 새로 개간하여 아직 토지 대장에도 오르지 않은 논밭.
- ↑ 귀실: 구실.
- ↑ 돌님졔(輪祭): 여러 형제가 차례를 정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지내는 제사. 또는, 그런 제사 방식.
- ↑ 어린 거시 : 어린 노비. 弱노비.
- ↑ 셰: 것이. ‘’의 주격형 ‘’(→씨)를 ‘셰’로 적은 것이다.
- ↑ 님자: 임자?. 본인의 부인, 妻家.
- ↑ 뎐민(田民): 전답과 노비.
- ↑ 묘졔(墓祭):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
- ↑ 나(羅州ㅣ): 지명.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 ↑ 시: 자세히.
- ↑ 일홈을 밧노라 면: 일홈은 이름. 하회문기 안에 ㅂ누재 당사자의 서명을 받고자 하면.
- ↑ 잠: 좀. 조금. ‘좀’에 해당하는 사투리.
- ↑ 갑진(甲辰): 1664년 현종 5년.
- ↑ 념뉵일(念六日): 26일.
- ↑ 뎡닌: 인명. 윤인미의 처남 유정린(柳廷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