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각주) |
|||
61번째 줄: | 61번째 줄: | ||
|} | |} | ||
− | ==''' | + | =='''주석'''== |
<references/> | <references/> | ||
2017년 3월 2일 (목) 04:56 판
{{탑비정보
|사진=Heysostele.jpg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850년 선사가 입적하고 삼기(三紀, 36년)가 지난 뒤, 헌강왕이 시호를 진감선사라 추증하고, 탑이름을 대공령탑이라 하였다.
![]() |
헌강대왕께서 지극한 덕화를 넓히고 참된 종교(禪宗)를 흠앙하시어 '진감선사(眞鑑禪師)'라고 추시하시고 탑이름을 '대공령탑'이라 하셨다. 그리고 전각을 허락하여 길이 명예를 전하도록 하시었다.[1] | ![]() |
출처: |
그러나 비석이 세워지기 전에 헌강왕이 죽고 뒤이어 정강왕이 즉위하였다. 정강왕은 최치원에게 명하여 비명을 짓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정강왕 2년(887년)에 비가 세워진다. 환영(奐榮) 스님이 글자를 새겼다.
가상현실
- 차후 있을 답사 후 보완..
갤러리
- 차후 있을 답사 후 보완.
그래프
관련항목
node | relation | node |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를 위한 비이다 | 혜소(惠昭)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에 위치한다 | 하동 쌍계사(河東 雙磎寺)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가 비문을 지었다 | 최치원(崔致遠)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가 비문을 썼다 | 최치원(崔致遠)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가 비문을 새겼다 | 환영(奐榮)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로 불려진다 | 사산비명(四山碑銘)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의 이름을 지었다 | 헌강왕 |
주석
- ↑ 최영성, 『교주 사산비명』, 이른아침, 2014,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