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사용자 3명의 중간 판 10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궁중기록화관 Top icon}} | ||
{{복식정보 | {{복식정보 | ||
− | | | + | |사진= 복두-민박소장.jpg |
− |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 + |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
|대표명칭= 복두 | |대표명칭= 복두 | ||
|한자표기= 幞頭 | |한자표기= 幞頭 | ||
|이칭별칭= | |이칭별칭= | ||
− | | | + | |구분= 관 및 쓰개 |
− | |착용신분 | + | |착용신분= [[백관]] |
− | + | |착용성별= 남성 | |
− | |||
− | | | ||
}} | }} | ||
=='''정의'''== | =='''정의'''== | ||
− | [[ | + | 조선의 [[백관의 공복]]인 [[단령|단령(團領)]]에 착용한 관(冠)이다. |
=='''내용'''== | =='''내용'''== | ||
− | === | + | 복두(幞頭)는 처음에는 두건에서 비롯되었다. 두건은 사각형의 직물을 머리에 두르고, 두 귀[角]를 먼저 정수리 아래에서 묶고 다른 두 귀를 뒤에서 앞으로 올려 이마에서 묶는다. 이후 한 폭의 직물을 묶던 것을 각을 세워 고정하여 2단으로 턱이 진 네모형이 되고 앞으로 올려 묶던 두 귀는 없어지고, 뒤로 내린 두 귀는 좌우로 길게 뻗쳐진 형태로 발전하였다. 북주[後周] 무제(武帝)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며, 한대(漢代) 즈음 두건을 사용하다 동한(東漢) 이후 두건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인 [[복건|복건(幅巾)]]이 출현하였다. 위진남북조 시기 선비족의 모자가 유입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복두]]가 탄생했다.<ref>孫杞,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1993, 205~223쪽.</ref> 신라 진덕여왕 이후 당나라에서 들어왔는데, 두 귀가 양옆으로 길게 뻗은 [[전각복두]]<ref>"[http://dic-costumekorea.org/meta/?act=detail&meta_uid=872 전각복두]", 디렉토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복식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복식학회.</ref>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모]]를 많이 착용하면서 [[복두]]를 착용하는 일이 줄어들어 조선후기에는 과거에 급제한 경우 [[앵삼|앵삼(鶯衫)]]과 함께 어사화를 꽃은 [[복두]]를 착용했다.<ref>"[http://dic-costumekorea.org/meta/?act=detail&meta_uid=816 복두]", 디렉토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복식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복식학회.</ref> |
− | |||
− | [[ | ||
− | == | + | =='''지식 관계망'''==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 !항목A!!항목B!!관계 |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 | + | |[[백관]] || 복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백관의 공복]] || 복두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
|} | |} | ||
+ | |||
===시간정보=== | ===시간정보=== | ||
===공간정보=== | ===공간정보=== | ||
− | ==시각자료== | + | =='''시각자료'''== |
===갤러리=== | ===갤러리=== | ||
<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200px> | <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200px> | ||
− | 파일:최치원 복두(신라).jpg|최치원 복두(신라)<ref> | + | 파일:최치원 복두(신라).jpg|채용신이 그린(1924년) 최치원 복두(신라)<ref>무성서원 소장.</ref> |
− | 파일:강민첨 복두(고려).jpg|강민첨 복두(고려)<ref> | + | 파일:강민첨 복두(고려).jpg|보물 제588호 강민첨 복두(고려)<ref>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 소장.</ref> |
</gallery> | </gallery> | ||
===영상=== | ===영상=== | ||
− | "채화복두를 쓴 악공" | + | "채화복두를 쓴 악공"<ref>"채화복두를 쓴 악공",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TV』<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
− | < | + | |
<html> | <html> | ||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serviceapi.rmcnmv.naver.com/flash/outKeyPlayer.nhn?vid=467C2700BE51473BCC1F757BD6F9E80411AA&outKey=V126e418d2090c662ceced668589503e7075f14274be363401cadd668589503e7075f&controlBarMovable=true&jsCallable=true&isAutoPlay=false&skinName=tvcast_whit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serviceapi.rmcnmv.naver.com/flash/outKeyPlayer.nhn?vid=467C2700BE51473BCC1F757BD6F9E80411AA&outKey=V126e418d2090c662ceced668589503e7075f14274be363401cadd668589503e7075f&controlBarMovable=true&jsCallable=true&isAutoPlay=false&skinName=tvcast_whit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html> | </html> | ||
− | ==주석== | + | =='''주석'''== |
<references/> | <references/> | ||
− | ==참고문헌== | + | =='''참고문헌'''== |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 * 柳喜卿, 「우리나라의 冠帽」, 『대한가정학회지』 제4권, 대한가정학회, 1963. | |
− | + | * 李民周, 「朝鮮時代 王族冠帽에 關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 |
+ | * 孫杞,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1993. | ||
+ | * 趙庚姬, 「朝幞頭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 ||
+ | * 황의숙 외3인, 『아름다운 한국복식』, 수학사, 2010. | ||
[[분류:궁중기록화]] | [[분류:궁중기록화]] | ||
[[분류:복식]] | [[분류:복식]] |
2017년 11월 13일 (월) 20:48 기준 최신판
복두 (幞頭) |
|
대표명칭 | 복두 |
---|---|
한자표기 | 幞頭 |
구분 | 관 및 쓰개 |
착용신분 | 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조선의 백관의 공복인 단령(團領)에 착용한 관(冠)이다.
내용
복두(幞頭)는 처음에는 두건에서 비롯되었다. 두건은 사각형의 직물을 머리에 두르고, 두 귀[角]를 먼저 정수리 아래에서 묶고 다른 두 귀를 뒤에서 앞으로 올려 이마에서 묶는다. 이후 한 폭의 직물을 묶던 것을 각을 세워 고정하여 2단으로 턱이 진 네모형이 되고 앞으로 올려 묶던 두 귀는 없어지고, 뒤로 내린 두 귀는 좌우로 길게 뻗쳐진 형태로 발전하였다. 북주[後周] 무제(武帝)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며, 한대(漢代) 즈음 두건을 사용하다 동한(東漢) 이후 두건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인 복건(幅巾)이 출현하였다. 위진남북조 시기 선비족의 모자가 유입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복두가 탄생했다.[1] 신라 진덕여왕 이후 당나라에서 들어왔는데, 두 귀가 양옆으로 길게 뻗은 전각복두[2]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모를 많이 착용하면서 복두를 착용하는 일이 줄어들어 조선후기에는 과거에 급제한 경우 앵삼(鶯衫)과 함께 어사화를 꽃은 복두를 착용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백관 | 복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백관의 공복 | 복두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채화복두를 쓴 악공"[6]
주석
- ↑ 孫杞,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1993, 205~223쪽.
- ↑ "전각복두", 디렉토리검색,
『한국복식사전』online , 한국복식학회. - ↑ "복두", 디렉토리검색,
『한국복식사전』online , 한국복식학회. - ↑ 무성서원 소장.
- ↑ 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 소장.
- ↑ "채화복두를 쓴 악공", 문화원형백과,
『네이버TV』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柳喜卿, 「우리나라의 冠帽」, 『대한가정학회지』 제4권, 대한가정학회, 1963.
- 李民周, 「朝鮮時代 王族冠帽에 關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 孫杞,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1993.
- 趙庚姬, 「朝幞頭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 황의숙 외3인, 『아름다운 한국복식』, 수학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