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지식 관계망) |
|||
(사용자 3명의 중간 판 10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 | + | {{개념정보 |
− | | | + | |사진= |
|사진출처= | |사진출처= | ||
|대표명칭= 친영 | |대표명칭= 친영 | ||
|한자표기= 親迎 | |한자표기= 親迎 | ||
− | | | + | |영문명칭= |
+ | |이칭= | ||
|유형= 의례 | |유형= 의례 | ||
− | | | + | |관련개념= [[가례]], [[혼례]] |
− | |||
}} | }} | ||
− | ==정의== | + | =='''정의'''== |
− | + | 조선시대 왕실 [[가례]]의 본 의식인 육례(六禮)의 하나로, [[왕]] 혹은 [[왕세자]]가 별궁으로 가서 예삭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절차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04341&cid=40942&categoryId=32169 친영]"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ref>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내용'''== | ||
+ | '''[[왕]]'''<br/> | ||
+ | 1517년(중종 17년)에 조선왕조에서 처음으로 왕의 [[친영]]이 행해졌다. 혼례날이 되면 [[왕]]은 [[면복]]을 입고 궁궐을 나오며, 신하가 기러기를 안고 왕보다 앞서 가며, 별궁에 도착하면 [[왕]]은 안으로 들어가 [[전안례|전안례(奠雁禮)]]를 한다. [[전안례]]는 [[왕]]과 [[왕비]]가 각각 동과 서로 서로 떨어져 나누어 마주보고 선 후, 왕이 북쪽 벽 앞에 놓은 상위에 기러기를 올리는 의식이다. [[전안례]]가 끝나면 [[왕]]이 [[왕비]]를 인도하여 궁으로 돌아온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140~143쪽.</ref> | ||
+ | <br/> | ||
+ | <br/> | ||
'''[[왕세자]]'''<br/> | '''[[왕세자]]'''<br/> | ||
− | [[왕]]과 동일하나, [[왕세자]]는 조선전기부터 [[친영]]을 행했다.<br/> | + | [[왕]]과 동일하나, [[왕세자]]는 조선전기부터 [[친영]]을 행했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140~143쪽.</ref> |
+ | <br/> | ||
+ | <br/> | ||
+ | '''[[공주]]''', '''[[옹주]]'''<br/> | ||
+ | [[친영]]이 있기 전에 신랑인 [[의빈|의빈(儀賓)]]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과 왕실 가족들에게 사배(四拜)의 예를 올렸다. [[왕녀]]의 부모 또는 [[왕]]이 예식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혼주(婚主)와 실제 부모의 불일치를 변례(變禮)를 통해 대신했다. 대전(大展)을 비롯한 궁궐의 웃어른을 만나는 공식적인 절차는 혼례가 끝난 후에 [[서조현의|서조현의(壻朝見儀)]]로 정해져 있지만, 친영에 앞서 의빈이 이들에게 절을 올리는 것은 신부의 친부모에 대한 예의이다.<ref>이욱,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덕온공주 가례 절차」, 『韓國服飾』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62~63쪽.</ref> | ||
− | ''' | + | =='''지식 관계망'''== |
− | + | <html> | |
− |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B002/B002a.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 | + | * [http://dh.aks.ac.kr/Encyves/Graph/A110/A110.htm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지식관계망]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 !항목A!!항목B!!관계 |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 [[왕]]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왕세자]]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황제]]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황태자]]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왕비]]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왕세자빈]]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황후]]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황태자빈]]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
+ | |- | ||
+ | | [[혼례]] || 친영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
+ | |- | ||
+ | | 친영 || [[책비]] ||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 A edm:isNextInSequence B | ||
+ | |- | ||
+ | | [[왕]] || [[왕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왕세자]] || [[왕세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왕비]] || [[왕비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 | [[왕세자빈]] || [[왕세자빈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 [[황제]] || [[황제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 [[황태자]] || [[황태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 [[황후]] || [[황후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 [[황태자빈]] || [[황태자빈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 ||
− | == | + | =='''주석'''== |
− | |||
− | |||
− | |||
<references/> | <references/> | ||
− | ==참고문헌== | + | =='''참고문헌'''== |
+ | ===인용 및 참조=== | ||
* 권오영 외, 『조선 왕실의 嘉禮』,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 권오영 외, 『조선 왕실의 嘉禮』,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
* 김문식, 「1823년 明溫公主의 가례 절차」, 『조선시대사학보』 56,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김문식, 「1823년 明溫公主의 가례 절차」, 『조선시대사학보』 56,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76번째 줄: | 105번째 줄: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 | [[분류:궁중기록화]] | + | |
− | [[분류:개념]] | + | [[분류:궁중기록화]] [[분류:개념]] [[분류:의례]] |
− | [[분류:의례]] |
2017년 11월 12일 (일) 00:39 기준 최신판
친영 (親迎) |
|
대표명칭 | 친영 |
---|---|
한자표기 | 親迎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가례, 혼례 |
정의
조선시대 왕실 가례의 본 의식인 육례(六禮)의 하나로, 왕 혹은 왕세자가 별궁으로 가서 예삭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절차이다.[1]
내용
왕
1517년(중종 17년)에 조선왕조에서 처음으로 왕의 친영이 행해졌다. 혼례날이 되면 왕은 면복을 입고 궁궐을 나오며, 신하가 기러기를 안고 왕보다 앞서 가며, 별궁에 도착하면 왕은 안으로 들어가 전안례(奠雁禮)를 한다. 전안례는 왕과 왕비가 각각 동과 서로 서로 떨어져 나누어 마주보고 선 후, 왕이 북쪽 벽 앞에 놓은 상위에 기러기를 올리는 의식이다. 전안례가 끝나면 왕이 왕비를 인도하여 궁으로 돌아온다.[2]
왕세자
왕과 동일하나, 왕세자는 조선전기부터 친영을 행했다.[3]
공주, 옹주
친영이 있기 전에 신랑인 의빈(儀賓)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과 왕실 가족들에게 사배(四拜)의 예를 올렸다. 왕녀의 부모 또는 왕이 예식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혼주(婚主)와 실제 부모의 불일치를 변례(變禮)를 통해 대신했다. 대전(大展)을 비롯한 궁궐의 웃어른을 만나는 공식적인 절차는 혼례가 끝난 후에 서조현의(壻朝見儀)로 정해져 있지만, 친영에 앞서 의빈이 이들에게 절을 올리는 것은 신부의 친부모에 대한 예의이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황제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황태자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비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빈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황후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황태자빈 | 친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혼례 | 친영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친영 | 책비 |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 A edm:isNextInSequence B |
왕 | 왕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왕비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빈 | 왕세자빈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제 | 황제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 | 황태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후 | 황후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빈 | 황태자빈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주석
- ↑ "친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네이버.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140~143쪽.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140~143쪽.
- ↑ 이욱,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덕온공주 가례 절차」, 『韓國服飾』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62~6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권오영 외, 『조선 왕실의 嘉禮』,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김문식, 「1823년 明溫公主의 가례 절차」, 『조선시대사학보』 56, 조선시대사학회, 2011.
- 김문식, 신병주 지음,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김선아, 「조선시대 치마ㆍ저고리 배색 특성에 관한 고찰-『嘉禮都監儀軌를 중심으로」, 『한국색채학회 논문집』 22권 1호, 한국색채학회, 2008.
- 김아람, 「복식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김정진, 「朝鮮時代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班次圖의 構造的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8.
- 백영자․김정진, 「조선시대 『嘉禮都監儀軌』의 班次圖에 나타난 服飾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4권 2호, 한국의류학회, 1990.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2000.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신병주, 박례경 외 2명 저, 『왕실의 혼례식 풍경 (조선 왕실의 행사 2)』, 돌베개, 2013.
- 신순자,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唐衣에 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1989.
- 심승구, 「조선시대 왕실혼례의 추이와 특성」, 『朝鮮時代史學報』 41, 조선시대 사학회, 2007.
- 유송옥, 「조선왕조시대 가례도감의궤와 그에 나타난 복식」, 『大東文化硏究』 20,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1986.
- 유송옥,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 1991.
- 이경자, 「『嘉禮都監儀軌』의 服飾 硏究」, 『服飾』 1권, 한국복식학회. 1977.
- 이욱,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덕온공주 가례 절차」, 『한국복식』 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 이욱, 「조선후기 後宮 嘉禮의 절차와 변천-慶嬪 金氏 嘉禮를 중심으로」, 『장서각』 1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이은주,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공주가례복식」, 『한국복식』 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 이주미, 「『연잉군가례등록』에 나타난 왕자가례의 절차와 복식」,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임민혁, 「조선시대 『謄錄』을 통해 본 왕비의 親迎과 권위」, 『韓國史學史學報』 25, 한국사학사학회, 2012.
- 임민혁, 『조선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조미나, 「조선왕조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궁녀의 직무에 따른 복식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 최경순,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가례복식의 실태에 관한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5권 1호, 한국의류학회, 199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