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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적장자(嫡長子) 계승의 원칙으로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되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둘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이다.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군주제도에서 큰 장점으로, 왕자들간의 다툼을 방지하고, 후계자를 미리 교육시켜 장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무력하거나, 적장자보다 둘째나 셋째 아들이 유능한 경우 정국은 늘 쿠데타의 가능성으로 불안했다. 또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들만 여러 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로 정치 불안이 가중되었다. [[왕]]이 아들을 보는 것은 종사가 걸린 일로, 아들을 얻기 위해 [[왕]]과 [[왕비]]는 길일을 택해 합방하고, 아들이 | + | 조선시대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적장자(嫡長子) 계승의 원칙으로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되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둘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이다.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군주제도에서 큰 장점으로, 왕자들간의 다툼을 방지하고, 후계자를 미리 교육시켜 장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무력하거나, 적장자보다 둘째나 셋째 아들이 유능한 경우 정국은 늘 쿠데타의 가능성으로 불안했다. 또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들만 여러 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로 정치 불안이 가중되었다. [[왕]]이 아들을 보는 것은 종사가 걸린 일로, 아들을 얻기 위해 [[왕]]과 [[왕비]]는 길일을 택해 합방하고, 아들이 들어서는 데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한다. 그 결과 임신하면 [[왕비]]는 본격적으로 태교에 들어가며, [[왕비]]의 만삭이 다가오면 예정일 서너 달 전에 [[산실청]]이 설치된다. 원자가 탄생함과 동시에 [[왕]]은 소격전(昭格殿)에 명하여 사흘간 아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왕]]도 몸소 소격전을 찾아와 절을 하며 첫아들의 만복을 기원한다. 탯줄은 어머니와 조상을 이어주는 생명의 통로로 여겨져 소중히 보관된다. [[왕세자]] [[책례]]는 원자를 [[왕세자]]로 책봉한다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으로, 조정의 [[백관]]들을 모아놓고 [[책례]]를 거행한 후 바로 종묘에 이 사실을 고하고 팔도에 알린다. [[왕세자]]는 예비 [[왕]]으로, [[왕세자]]로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위치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왕세자]]가 정치에 관여하거나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바로 삼사관료들의 탄핵 요구가 뒤따르게 된다.또한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왕세자]]는 아들이 아닌 정적으로 간주하므로 [[왕세자]]가 대리청정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60125&cid=49298&categoryId=49298 왕세자]",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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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김문식, 『왕세자의 입학식』, 문학동네, 2010. | ||
+ | * 김문식, 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1998. |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1998. | ||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
− | + | * 육수화, 『조선의 왕과 왕세자』, 민속원, 2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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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1:12 기준 최신판
왕세자 (王世子) |
|
대표명칭 | 왕세자 |
---|---|
한자표기 | 王世子 |
유형 | 신분 |
정의
조선시대 왕의 후계자로,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강제력과 권력의 정당화가 수반되는 통치자의 아들이다.[1]
내용
지위와 활동
조선시대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적장자(嫡長子) 계승의 원칙으로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되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둘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이다.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군주제도에서 큰 장점으로, 왕자들간의 다툼을 방지하고, 후계자를 미리 교육시켜 장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무력하거나, 적장자보다 둘째나 셋째 아들이 유능한 경우 정국은 늘 쿠데타의 가능성으로 불안했다. 또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들만 여러 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로 정치 불안이 가중되었다. 왕이 아들을 보는 것은 종사가 걸린 일로, 아들을 얻기 위해 왕과 왕비는 길일을 택해 합방하고, 아들이 들어서는 데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한다. 그 결과 임신하면 왕비는 본격적으로 태교에 들어가며, 왕비의 만삭이 다가오면 예정일 서너 달 전에 산실청이 설치된다. 원자가 탄생함과 동시에 왕은 소격전(昭格殿)에 명하여 사흘간 아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왕도 몸소 소격전을 찾아와 절을 하며 첫아들의 만복을 기원한다. 탯줄은 어머니와 조상을 이어주는 생명의 통로로 여겨져 소중히 보관된다. 왕세자 책례는 원자를 왕세자로 책봉한다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으로, 조정의 백관들을 모아놓고 책례를 거행한 후 바로 종묘에 이 사실을 고하고 팔도에 알린다. 왕세자는 예비 왕으로, 왕세자로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위치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왕세자가 정치에 관여하거나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바로 삼사관료들의 탄핵 요구가 뒤따르게 된다.또한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왕세자는 아들이 아닌 정적으로 간주하므로 왕세자가 대리청정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2]
왕의 후계자로 예정된 세자의 역할은 열심히 공부하고,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만약 이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면 절대권력자인 왕과 부딪치게 되고 폐세자의 위기에 직면한다. 왕세자를 교육하는 기관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며, 호위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가 담당하였다. 왕세자의 교육을 위해 당연직으로 영의정이 왕세자의 사(師)로, 좌의정과 우의정 중에서 한 명이 부(傅)로, 종 1품의 찬성 한 명이 이사(二師)로 임명된다. 그러나 실제로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보덕(輔德) 이하의 전임관료들이다. 세자시강원의 전임관료는 정3품의 보덕1명, 정4품의 필선(弼善) 1명, 정5품의 문학(文學)1명, 정6품의 사서(司書)1명, 정 7품의 설서(設書) 1명 등 5명이다. 이들은 모두 문과에 합격한 가문 좋고 실력이 뛰어난 참상관들이다. 왕세자 교육에는 『소학』, 『효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대학연의(大學衍義)』, 『상서(尙書)』, 『주역』, 『예기』, 『춘추좌전(春秋左傳)』,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이 교재로 이용된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효장세자 | 왕세자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사도세자 | 왕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문효세자 | 왕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효명세자 | 왕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왕세자 | 왕세자빈 | A는 B의 남편이다 | A ekc:hasWife B |
왕세자 | 왕세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조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상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군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융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왕세자의 편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문식, 『왕세자의 입학식』, 문학동네, 2010.
- 김문식, 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1998.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육수화, 『조선의 왕과 왕세자』, 민속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