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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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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고부민란]] 이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로 부임한 [[이용태|이용태(李容泰)]]는 사후처리를 동학교도 탄압의 기회로 삼아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그들의 격분을 샀다.<ref>김창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65 동학운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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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민란]] 이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로 부임한 [[이용태|이용태(李容泰)]]는 사후처리를 동학교도 탄압의 기회로 삼아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그들의 격분을 샀다.<ref>김창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65 동학운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1894년 4월 [[전봉준]]은 [[김기범|김기범(金箕範)]]·[[손화중|손화중(孫華中)]]·[[최경선|최경선(崔敬善)]] 등의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茂長縣)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창의문에 근방의 10여 읍에서 호응하고, 10여일 만에 1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동학교도와 농민과의 결합은 이때부터 비롯되었고,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봉기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ref>김창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65 동학운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1894년 4월 [[전봉준]]은 [[김기범|김기범(金箕範)]]·[[손화중|손화중(孫華中)]]·[[최경선|최경선(崔敬善)]] 등의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茂長縣)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창의문에 근방의 10여 읍에서 호응하고, 10여일 만에 1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동학교도와 농민과의 결합은 이때부터 비롯되었고,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봉기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ref>김창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65 동학운동]",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전봉준]]은 1894년 4월부터 12월까지 [[1차 동학농민운동]]과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으나, 부하였던 [[김경천|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1895년 교수형을 당하였다.<ref>"부하였던...교수형을 당하였다." - 출처: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17830 전봉준]",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전봉준]]은 1894년 4월부터 12월까지 [[1차 동학농민운동]]과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으나, 부하였던 [[김경천|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1895년 교수형을 당하였다.<ref>"부하였던...교수형을 당하였다." - 출처: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17830 전봉준]",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2017년 10월 31일 (화) 11:01 판

전봉준(全琫準)
김창수, "전봉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전봉준
한자표기 全琫準
생몰년 1855년-1895년
본관 천안
이칭 녹두장군
해몽(海夢)
명좌(明佐)
시대 근대
국적 조선
대표직함 동학접주
유형 농민운동가



정의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내용

고부민란 주도

1892년(고종 29)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趙秉甲)이 농민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양민의 재산을 갈취하는 등 탐학을 자행하고 만석보(萬石洑) 밑에 다시 보를 축조, 불법으로 수세(水稅)를 징수하였다. 이에 농민 대표와 함께 그 시정을 진정하였으나 거부당하자 1894년 1월 1000여 명의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고 강탈당하였던 세곡을 농민에게 배분하고 부패한 관원들을 감금하였다.
정부는 조병갑 등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이용태(李容泰)를 안핵사로 보내어 사태를 조사·수습하도록 하였으나 이용태는 민란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돌려 체포·투옥·살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는 등 동학교도 탄압과 탐학을 자행하였다.[1]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고부민란 이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로 부임한 이용태(李容泰)는 사후처리를 동학교도 탄압의 기회로 삼아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그들의 격분을 샀다.[2] 1894년 4월 전봉준김기범(金箕範)·손화중(孫華中)·최경선(崔敬善) 등의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茂長縣)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창의문에 근방의 10여 읍에서 호응하고, 10여일 만에 1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동학교도와 농민과의 결합은 이때부터 비롯되었고,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봉기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3]
전봉준은 1894년 4월부터 12월까지 1차 동학농민운동2차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으나, 부하였던 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1895년 교수형을 당하였다.[4]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전봉준 동학농민운동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김개남 동학농민운동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손화중 동학농민운동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손병희 동학농민운동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894년 1월 전봉준고부민란에 참여하였다
1894년 3월 전봉준1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894년 9월 전봉준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894년 12월 전봉준이 체포되었다
1895년 전봉준이 처형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720230 126.806633 전봉준백산성에서 봉기하였다
35.671222 126.814583 전봉준정읍 전봉준 유적에 기거하였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전봉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2. 김창수, "동학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김창수, "동학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부하였던...교수형을 당하였다." - 출처: "전봉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5. 김창수, "전봉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김창수, "전봉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전봉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더 읽을거리

  1. 단행본
    • 이이화, 『파랑새는 산을 넘고』, 김영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