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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정혜원융탑(定慧圓融塔)]]은 [[혼수|보각국사]]의 사리(舍利)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조선 태조|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ref>"[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tour.jsp?cid=125966 청룡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대한민국 구석구석』<sup>online</sup></online></html>, 한국관광공사.</ref>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정혜원융탑(定慧圓融塔)]]은 [[혼수|보각국사]]의 사리(舍利)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조선 태조|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ref>"[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tour.jsp?cid=125966 청룡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대한민국 구석구석』<sup>online</sup></online></html>, 한국관광공사.</ref> | ||
− | 지금 충주에 | + | 지금 충주에 있는 청룡사(靑龍寺)는 작은 절이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나 근래에 다시 지은 조그만 건물들이어서 옛적 큰 절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절은 본디 암자가 있던 곳이고 예전의 절은 그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12 - 충북』, 돌베개,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5804&cid=42840&categoryId=42853 청룡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 충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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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1393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는 [[혼수]]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찹|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 |1392년-1393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는 [[혼수]]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찹|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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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무너져 있던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보각국사탑]]을 복원하였다. | |1968년 || 무너져 있던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보각국사탑]]을 복원하였다. |
2017년 10월 30일 (월) 13:34 판
충주 청룡사 (忠州 靑龍寺) |
|
대표명칭 | 충주 청룡사 |
---|---|
한자 | 忠州 靑龍寺 |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었던 고려시대 터.
내용
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태조의 사부 보각국사(普覺國師)가 은거하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탑인 정혜원융탑(定慧圓融塔)과 석등(石燈), 정혜원융탑비(定慧圓融塔碑) 등이 남아 있다.[1]
정혜원융탑(定慧圓融塔)은 보각국사의 사리(舍利)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2]
지금 충주에 있는 청룡사(靑龍寺)는 작은 절이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나 근래에 다시 지은 조그만 건물들이어서 옛적 큰 절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절은 본디 암자가 있던 곳이고 예전의 절은 그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3]
청룡사에 전하는 전설
소태면 오량리에 청계산이라는 이름난 산이 있다. 조선 말 민씨네가 득세를 할 때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하여 민씨네가 이곳으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부근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없애기로 했다. 당시 이곳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이 컸고 사찰의 운영권도 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절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민씨 가에서는 비밀리에 사람을 사서 절에다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 때 이 절 지붕에서 살 던 큰 뱀이 내려와 불을 지른 사람의 앞을 가로 막으니 한 사람은 놀라 자빠져 피를 토하며 죽고, 또 한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절 위에 쓴 민씨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까지도 오기만하면 생명을 잃고 갔기에 산소도 묵모이로 옮겼다고 한다.[4]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충주 청룡사지 | 충주 청룡사 | A는 B의 터이다 | A edm:isRelatedTo B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충주 청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 | 충주 청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 | 충주 청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충주 청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혼수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A ekc:isSteleOf B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혼수 |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 A ekc:isStupaOf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392년 | 혼수가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普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
1392년-1393년 |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는 혼수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
1394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이 완성되었고, 희달이 왕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의 비문을 짓고, 승려 김천택이 글씨를 썼다. |
조선후기 |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이 세워졌다. |
1968년 | 무너져 있던 보각국사탑을 복원하였다. |
주석
- ↑ "청룡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 ↑ "청룡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12 - 충북』, 돌베개, 1998. 온라인 참조: "청룡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 충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청룡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참고문헌
-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 충북의 전통사찰Ⅰ』, 사찰문화연구원, 1998.
- 청주대학교박물관, 『충주시 문화유적』, 청주대학교박물관, 2002.
- 장준식, "청룡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12 - 충북』, 돌베개, 1998. 온라인 참조: "청룡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 충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청룡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