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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최초로 고종 임금의 어진을 찍었던 어용 사진가 겸 어용화사, 그의 이름은 천연당 사진관의 창업자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었다. | 조선인 최초로 고종 임금의 어진을 찍었던 어용 사진가 겸 어용화사, 그의 이름은 천연당 사진관의 창업자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었다. | ||
1868년(고종 5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김규진은 조선 말기의 대(大) 서화가이며 사진관을 연 최초의 사진사였다. 그에게 굳이 ‘큰 대’ 자를 붙이는 이유는 김규진이 대자(大字), 큰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의 보신각 현판, 합천 해인사의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진주 촉석루 현판 등이 바로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 1868년(고종 5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김규진은 조선 말기의 대(大) 서화가이며 사진관을 연 최초의 사진사였다. 그에게 굳이 ‘큰 대’ 자를 붙이는 이유는 김규진이 대자(大字), 큰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의 보신각 현판, 합천 해인사의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진주 촉석루 현판 등이 바로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
2017년 10월 29일 (일) 00:19 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7260932411&code=900313#csidxd457f4ec09c44f4bfea9cfd8ab30f00
조선인 최초로 고종 임금의 어진을 찍었던 어용 사진가 겸 어용화사, 그의 이름은 천연당 사진관의 창업자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었다. 1868년(고종 5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김규진은 조선 말기의 대(大) 서화가이며 사진관을 연 최초의 사진사였다. 그에게 굳이 ‘큰 대’ 자를 붙이는 이유는 김규진이 대자(大字), 큰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의 보신각 현판, 합천 해인사의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진주 촉석루 현판 등이 바로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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