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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5일 (수) 15:27 판
후소회(後素會) | |
대표명칭 | 후소회 |
---|---|
한자표기 | 後素會 |
유형 | 동양화가단체단체 |
창립자 | 김기창,백윤문,장우성,조중현,이유태 |
창립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창립일 | 1936년 1월 18일 |
해체일 | 현대 |
목차
정의
1936년에 개설한 김은호 문도 출신 동양화가들의 단체.[1]
내용
김은호 문도로 구성
김은호(金殷鎬)의 낙청헌(絡靑軒)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들이 1936년에 결성한 단체로 백윤문(白潤文), 김기창(金基昶), 장우성(張遇聖), 한유동(韓維東), 이유태(李惟台), 조중현(趙重顯), 장운봉(張雲鳳; 뒤에 장덕(張德)으로 개명), 정홍거(鄭弘巨) 등이 참여했다.[2]
채색화 확가 중심
후소회는 일제 강점기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를 그린 화가들이 중심이었고, 수묵산수화를 주로 그린 이상범의 청전화숙과 쌍벽을 이루었다. 1936년 정식 창립하여 같은 해 10월 서울 태평로 조선실업구락부에서 창립전을 가졌다.
후소회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의 화롱으로 유명하며 선전에 입선한 동양화 60점 중 21점이 후소회 회원들의 그림이었다. 백윤문·김기창이 특선작가로 장우성이 총독상과 창덕궁상, 이유태·조중현도 최고상을 받았다.[3]
창립 70주년
후소회는 1943년 제6회로 전람회를 잠시 중단하고 6·25전쟁 직전 제7회전, 1971년 제8회전, 1977년 제9회전을 열었다. 김은호의 1, 2대 제자 및 그와 관계있는 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2006년에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제35회 회원전을 열렸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이다.[4]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후소회 | 김은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후소회 | 김기창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후소회 | 장우성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후소회 | 백윤문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후소회 | 한유동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후소회 | 이유태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후소회 | 조중현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강민기, "후소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강민기, "후소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후소회",
『다음백과』online . - ↑ 강민기, "후소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