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답사 남간정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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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송시열]]이 1683년 만년에 능인암 아래에 건립한 서당으로, 송시열은 여기서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성리학을 강론하며 지냈다. | ||
+ | * 남간정사의 ‘남간’은 주자의 시구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빌어온 말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뜻한다. 지금은 이 일대까지 시가지가 번져왔고 바로 옆으로 찻길이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지금의 담 안쪽뿐 아니라 주변의 숲과 시내가 모두 남간정사의 뜨락이 되었을 것이다. | ||
+ | *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방법이다. | ||
+ | *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네 칸은 대청이고 서쪽 두 칸은 방이며 동쪽 두 칸은 뒤쪽 한 칸이 방이고 앞쪽 한 칸에 대청과 연결된 누마루가 놓였다. 대청보다 한 단 높게 만들어진 이 누마루는 방에서 볼 때는 다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아래쪽에 아궁이가 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 밑으로 물길을 낸 점이다. 양쪽의 방은 축대 위에 세워졌고 대청은 다리 걸치듯 공중에 떠 있다. 그 아래로 집 뒤편 샘에서 나온 물이 흘러 앞쪽 연못으로 들어간다. 또 이 건물은 앞이 아니라 뒤쪽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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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 '''불가''' | # 드론 '''불가''' |
2017년 10월 8일 (일) 12:59 판
답사지 정보
남간정사
- 송시열이 1683년 만년에 능인암 아래에 건립한 서당으로, 송시열은 여기서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성리학을 강론하며 지냈다.
- 남간정사의 ‘남간’은 주자의 시구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빌어온 말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뜻한다. 지금은 이 일대까지 시가지가 번져왔고 바로 옆으로 찻길이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지금의 담 안쪽뿐 아니라 주변의 숲과 시내가 모두 남간정사의 뜨락이 되었을 것이다.
-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방법이다.
-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네 칸은 대청이고 서쪽 두 칸은 방이며 동쪽 두 칸은 뒤쪽 한 칸이 방이고 앞쪽 한 칸에 대청과 연결된 누마루가 놓였다. 대청보다 한 단 높게 만들어진 이 누마루는 방에서 볼 때는 다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아래쪽에 아궁이가 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 밑으로 물길을 낸 점이다. 양쪽의 방은 축대 위에 세워졌고 대청은 다리 걸치듯 공중에 떠 있다. 그 아래로 집 뒤편 샘에서 나온 물이 흘러 앞쪽 연못으로 들어간다. 또 이 건물은 앞이 아니라 뒤쪽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기국정
남간사
촬영 스팟
- 드론 불가
- 파노라마 5
- 정문 앞
- 기국정 앞
- 남간정사 + 못 보이게
- 남간정사 뒷편
- 남간사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