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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룡,「조선후기의 주자인쇄(鑄字印刷)」, 『향토서울』 7, 1959 | ** 김원룡,「조선후기의 주자인쇄(鑄字印刷)」, 『향토서울』 7, 1959 | ||
** 김두종,「한글활자고(活字考)」,『최현배환갑기념논문집』, 1954 | ** 김두종,「한글활자고(活字考)」,『최현배환갑기념논문집』, 1954 | ||
− | ** 屈萬里·昌彼得, 『圖書板本學要略』, 中華文化出版事業委員會, 民國 44, | + | ** 屈萬里·昌彼得, 『圖書板本學要略』, 中華文化出版事業委員會, 民國 44,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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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일 (화) 09:58 판
정리자 (整理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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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정리자 |
---|---|
한자표기 | 整理字 |
시대 | 조선/1795년(정조19) |
정의
1796년(정조 20)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1]
내용
정리자는 1795년(정조 19) 『정리의궤통편(整理儀軌通編)』을 출판하기 위해 만든 활자이다. 글씨체는 중국 청(淸)나라에서 만든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씨체를 바탕으로 한 인쇄체로 읽기에 편리하였다. 정리자는 이전에 만든 금속활자에 비해 활자모양이 반듯하고 높이도 일정하여 인쇄하기에도 편리하였다. 1857년(철종 8) 활자를 보관해두었던 주자소(鑄字所)에 불이 나 정리자가 불타버려 다음 해 다시 정리자를 만들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활자는 대부분 두 번째 만든 정리자이다.
사용처
첫번째 만든 정리자[初鑄整理字]는 주로 조선왕실에서 의궤를 편찬할 때 사용되었으며 두번째 만든 정리자[再鑄整理字]는 의궤 인쇄뿐만 아니라 구한말 발행한 교과서, 관보(官報), 법령, 조약문을 인쇄할 때도 널리 사용되었다.활자의 뒷면은 활의 등처럼 속으로 움푹 패여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활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청동의 사용량을 절약하면서 점착물이 그 속에 들어차면 움직이지 않도록 고안되었던 방법이다. [2]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정리자 | 오륜행실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정리자 | 정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정리자 | 주자소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주석
참고문헌
- 사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판당고(板堂考)
- 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
- 홍재전서(弘齋全書)
- 저서
- 천혜봉,『한국전적인쇄사(韓國典籍印刷史)』, 범우사, 1990
- 천혜봉,『한국고인쇄사(韓國古印刷史)』,한국도서관학연구회, 1976
- 김두종,『한국고인쇄기술사(韓國古印刷技術史)』, 탐구당, 1974
- 정지용, 『수향편(袖香編)』, 정지용, 동문사, 1971
- 김원룡,「조선후기의 주자인쇄(鑄字印刷)」, 『향토서울』 7, 1959
- 김두종,「한글활자고(活字考)」,『최현배환갑기념논문집』, 1954
- 屈萬里·昌彼得, 『圖書板本學要略』, 中華文化出版事業委員會, 民國 44,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