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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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릭]]은 의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는 [[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철릭]]은 의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는 [[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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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로 갈수록 상의에 비해 하상의 길이가 길어진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점차 상이 더 길어져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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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5일 (월) 15:16 판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파일:민족기록화 일러 관련기사.jpg
김현승 일러스트레이터
대표명칭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정의

민족기록화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고증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기사

내용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곽재우는 그의 아버지인 곽월(郭越)이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로 갔을 때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의 철릭(帖裏)을 입고 정암진싸움에 임했다고 한다. 왜군들은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의 모습을 보고 그를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렀다고 한다.

Quote-left.png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Quote-right.png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1]


철릭은 의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상의에 비해 하상의 길이가 길어진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점차 상이 더 길어져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단행본
  2.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