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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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 ||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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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릭]]은 의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는 [[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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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5일 (월) 15:11 판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 |
대표명칭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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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민족기록화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고증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기사
내용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곽재우는 그의 아버지인 곽월(郭越)이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로 갔을 때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의 철릭(帖裏)을 입고 정암진싸움에 임했다고 한다. 왜군들은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의 모습을 보고 그를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렀다고 한다.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 ||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
철릭은 의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는 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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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단행본
- 조정래, 『아리랑 1: 조정래 대하소설』, 해냄, 2001, 235쪽.
- 윤병석, 『한국독립운동의 해외사적 탐방기』, 지식산업사, 1994, 291쪽.
- 기사
- 강신철, "민족기록화 대부분 사실과 달라", 『경향신문』, 작성일: 1980년 02월 26일.
- 김태완, "항일(抗日)과 친일로 이어진 명성황후 후손들의 120년 영락", 『월간조선』, 작성일: 2015년 10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