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김대성과 석굴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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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수) 00:46 판
| 김대성과 석굴암 | |
| 작가 | 이종상 |
|---|---|
| 제작연도 | 1979년 |
| 규격 | 300호(290.9x197cm) |
| 유형 | 문화/건축 |
| 분류 | 한국화 |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개요
신라 김대성(金大城 700~774)의 불국사와 석불사의 창건 설화를 묘사한 그림. 『삼국유사』권5 효선(孝善)편에 "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하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 : 석굴암)를 창건하여 신림(神琳) 표훈(表訓) 두 스님을 청해 각각 머물게 했다"고 적혀 있다.[1]
내용
석굴암은 네모난 공간의 전실과 석가모니 본존불을 모신 원형 공간의 주실, 그리고 전실과 주실로 통하는 비도(扉道)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은 주실에 본존불을 안치하고 본존불 주위로 10대 제자 입상을 설치하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화면 왼편 하단에는 석재 위에 기하학적 구도가 그려진 석굴암 설계도면과 그림쇠(컴파스), 곱자(직각자)가 보이고 김대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두 승려(신림과 표훈)와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으로 본존불의 뒤편 감실에 안치할 보살상을 조각하고 있는 석공들이 보이는데, 오른쪽 끝에는 연꽃대좌 위에 오른쪽 무릎을 꾾고 앉아 왼손으로 턱을 괴고 사색에 잠겨 있는 자유로운 유희좌를 한 미륵보살의 뒷부분 마무리를 석공이 하고 있다. 미륵보살상 뒤에는 석공 두 사람이 나무 지지대에 석재를 세워 놓고 본존불의 후면 광배를 조각하고 있으며, 본존불 앞에 가림막을 드리우고 이동식 도르래를 이용하여 완성된 제자상을 세우고 있는 장면은 시대를 뛰어 넘어 조선후기 화성 건설에 사용되었던 거중기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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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출정보
작품정보 연결망
관련항목
| 노드 | 관계 | 노드 |
|---|---|---|
| 이종상-김대성과 석굴암 | ~에 의해 그려지다 | 이종상 |
시간정보
|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
| 이종상-김대성과 석굴암 | 제작연도 | 1979년 |
| 한국학중앙연구원 | 소장처 | 1998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