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진영(통도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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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사진=Tongdosa Naong Portrait.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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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칭=懶翁眞影 | |한자명칭=懶翁眞影 |
2017년 9월 20일 (수) 21:44 판
나옹 진영 | |
한자명칭 | 懶翁眞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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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통도사 |
문화재지정사항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77호 |
유형 | 유물 |
크기(세로×가로) | 172.7×86.2㎝ |
정의
고려 말의 승려 나옹(懶翁, 1320-1376)의 진영.
내용
이 작품은 나옹(懶翁)이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좌상이다.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돌려 중앙을 향하고 있는데 왼손으로 긴 주장자를 비껴들고 먼 곳을 주시하면서 사색에 잠겨 있는 듯 하다.[1] 붉은 가사에 녹색 장삼을 착용하였으며, 오른손은 의자를 잡고 있다. 화면 향좌측 상단에 ‘고려공민왕사보제존자나옹대화상(高麗恭愍王師普濟尊者懶翁大和尙)’이라는 화제명이 적혀 있다. [2]
통도사 삼화상 진영
나옹 진영(통도사)은 통도사의 삼화상(三和尙) 진영 중 하나다. 삼화상은 고려 후기의 사회적 모순과 불교계 내부의 갈등을 개혁하고자하는 의지를 보였던 고승들로,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화상을 말한다. 조선시대 억불의 분위기 속에서도 조사신앙(祖師信仰)의 대상이 되어 여러 곳에 그 진영이 모셔졌으며, 조선전기에 조사신앙의 예배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삼화상을 함께 봉안하는 경향이 유행한 것으로 보여 진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삼화상 진영은 양공(良工) 의윤(義允)이 조성한 것이다. 3점 모두 조사신앙의 단적인 예가 될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의자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띠고 있어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나옹 진영(통도사) | 나옹 | A는 B를 묘사하였다 | |
나옹 진영(통도사) | 양산 통도사 | A는 B에 있다 | |
나옹 진영(통도사) | 무학 진영(통도사) | A는 B와 관련있다 | |
나옹 진영(통도사) | 나옹 진영(대곡사) | A는 B와 관련있다 | |
나옹 진영(통도사) | 나옹 진영(신륵사) | A는 B와 관련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주석
- ↑ "통도사삼화상진영",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박은경, 통도사 삼화상 진영",
『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통도사 삼화상 진영",
『소장유물』online , 통도사 성보박물관.
참고문헌
- "박은경, 통도사 삼화상 진영",
『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통도사삼화상진영",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통도사 삼화상 진영",
『소장유물』online , 통도사 성보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