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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4일 (목) 20:26 판

틀:장소정보1

정의

창경궁에 있는 전각으로, 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이다. 특히 영조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시험했던 전각이다.[1]

내용

역사

창경궁 건립 때에는 없었는데, 1633년(인조 11)의 『창경궁수리소의궤』에 12칸의 창경궁 숭문당을 수리한 기록이 있고, 『영조실록』에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광해군창경궁을 중건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1830년(순조 30)에 화재를 당해 1834년 내전 일곽과 함께 중건되었다.[2]

현재

영조가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던 곳으로,[3] ‘숭문당’이라는 현판의 글씨와 창경궁 숭문당 내부에 걸려 있는 ‘일감재자(日監在玆)’라는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창경궁 숭문당(昌慶宮 崇文堂) 의소세손 A는 B의 빈전이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752년 3월 6일 의소세손의 빈전이 창경궁 숭문당이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문영빈, 『창경궁』, 대원사, 1991, 86쪽.
  2. 문영빈, 『창경궁』, 대원사, 1991, 86쪽.
  3. 문영빈, 『창경궁』, 대원사, 1991, 86쪽.
  4. 문화재청 창덕궁 숭문당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공준원, 『오궁과 도성』, 세계문예, 2009.
  • 문영빈, 『창경궁』, 대원사, 1991.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