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출처 밝히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2017.09.13. 학술 발표회 자료의 경우) |
|||
(사용자 5명의 중간 판 18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추가 검토사항== | ||
+ | *'''오프라인 문화재 안내판 내용을 인용한 경우''' | ||
+ | **예: 경상남도,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재 안내판. | ||
+ | |||
*'''작성일을 표시하는 위치''' | *'''작성일을 표시하는 위치''' | ||
**개별 기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기사명과 DB명 사이에 작성일을 표시하기. | **개별 기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기사명과 DB명 사이에 작성일을 표시하기. | ||
11번째 줄: | 15번째 줄: | ||
*온라인 저작물을 다른 DB에서 활용한 경우. ---- "온라인 참조: " 또는 semi-colon only ?? | *온라인 저작물을 다른 DB에서 활용한 경우. ---- "온라인 참조: " 또는 semi-colon only ?? | ||
**"민영환 집 터",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 』<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04583&cid=49352&categoryId=49352 민영환 집 터]",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2월 15일. | **"민영환 집 터",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 』<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04583&cid=49352&categoryId=49352 민영환 집 터]",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2월 15일. | ||
+ | |||
+ | ==토론 내용== | ||
+ | * DB명에 대해서 문서명을 작은따옴표로 표현하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점도 유념해야겠네요. 기존에는 모든 문서명에 큰따옴표를 썼기에 일단 기록해 놓습니다. |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background:white;" | ||
+ | !style="width:10%"|이름||style="width:90%"|의견 | ||
+ | |- | ||
+ | |강혜원 || 이 부분은 단순히 교수님께서 큰따옴표를 작은따옴표로 잘못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참고하고 있는 자료에도 모두 큰따옴표를 사용하고 있고, 교수님께서 샘플로 작성하신 "Encyves 기사 표준 형식"에도 모두 큰따옴표로 쓰셨습니다. | ||
+ | |} | ||
+ | |||
+ | *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활용한 경우에 대해서도 지침과 예시를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
+ | ** 우선 사료의 경우, 다음과 같이 표기하기로 되어 있어요. | ||
+ | *** 『正祖實錄』 9년(1785) 4월 戊子(또는 일자): 「掌令柳河源上疏」. | ||
+ | ** 순수하게 이 방식만을 그대로 준용해서 표현하면 아래와 같겠지요. | ||
+ | *** 『중종실록』 12년(1517) 12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212013_002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밀양부에 아비를 죽인 자식 박군효에 대해 치계하다]」. | ||
+ | ** 여기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온라인서비스로부터 참고했다는 내용을 추가하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 ||
+ | *** 『중종실록』 12년(1517) 12월 13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212013_002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밀양부에 아비를 죽인 자식 박군효에 대해 치계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 최종확인: 2017년 04월 06일. | ||
+ | ** 기존의 '출처 밝히기' 지침들 중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추정해서 적어본 것이고요, 이 경우와 관련해서 재검토 후 지침과 예시를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
+ |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background:white;" | ||
+ | !style="width:10%"|이름||style="width:90%"|의견 | ||
+ | |- | ||
+ | |강혜원 || 이 부분도 교수님께서 샘플로 작성하신 "Encyves 기사 표준 형식" 중 [[정순왕후의 혼례식 - 왕실의 혼례 절차와 복식]] 기사를 참고해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 ||
+ | |} | ||
+ | |||
+ | ==2017년 4월 22일 사료 출처에 대해서== | ||
+ | |||
+ | * 사료 출처 관에서 한가지 말씀드립니다. 본래 조선왕조 실록인 경우 중국연호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분명 정통성 관련해서 한국사 측에서 말이 많아서 중국년호를 빼는 대신 차라리 왕 재위년호를 실록 뒤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표기하는게 기존 사학계 입장입니다. | ||
+ | ** 조선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4월 9일(무자) 1번째 기사 | ||
+ | ** 조선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4월 9일(무자) "이의행이 홍복영 등 역적들에 대한 형전을 강화할 것을 청하다." | ||
+ | * 이렇게 위 두 가지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을 병기해도 무방하고 빼도 되는데 왕조를 표시하는 이유는 명이나 청 실록에서도 똑같은 시호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려사 삼국시대 대부분 사료의 성격상 세부 항목도 표시하면 좋으나 권까지 표시해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아래 예를 들면 | ||
+ | ** 『삼국사기』권6, 「신라본기」제6, 문무왕 1년(661) 6월, "숙위 인문과 유돈 등이 황제의 명령을 전하다." : 날짜(일)가 미정이기에 바로 기사 제목을 붙임 | ||
+ | ** 『고려사』권2, 「세가」 권2, 광종 4년(953), "후주에서 왕을 책봉하다." : 월과 일이 미상이기에 기사 제목을 바로 붙임. | ||
+ | *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한국사는 대부분 고서들이 국사편찬의원회 사이트에서 서비스가 되어있고, 권 월 일 기사로 분류되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실록이나 기사류 사료뿐만 아니라 일반 고문서 사료도 책이 한 권이면 가능하나 총서일 경우 책 자체를 표시하고 바로 그 뒤에 권을 붙이는 방식이 더 깔끔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
+ |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background:white;" | ||
+ | !style="width:10%"|이름||style="width:90%"|의견 | ||
+ | |- | ||
+ | |강혜원 || 위의 실록 전거 내용을 참고해서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br/> | ||
+ | 그런데, 기존에 제시했던 한중연 학위 논문의 전거 표시 방법에서는 원래 중국 연호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신 이유 또는 근거가 있으시면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br/> | ||
+ | 그리고 삼국사기나 고려사의 경우도 이미 특정 웹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다면 새로운 방식을 만들 필요 없이, 실록 전거 표시와 동일한 방법을 쓰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
+ | |} | ||
+ | |||
+ | ==2017년 4월 23일 사료 출처에 대해서== | ||
+ | |||
+ | *사료에서 역사적 개념이나 장소 사실을 검색할 때 여러가지 기사가 많게 뜰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이후 참고문헌 처리할 때 문제가 많은 데요. | ||
+ |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2월 8일(기미) 1번째 기사. | ||
+ |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4월 25일(갑술) 2번째 기사. | ||
+ |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5월 6일(을유) 2번째 기사. | ||
+ | *다음과 같이 위 3 기사인 경우는 모두 『선조실록』 7권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참고문헌 작성시 아래와 같이 | ||
+ | ** 『선조실록』 7권 | ||
+ | *이렇게 표시 할 수 있습니다. | ||
+ |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background:white;" | ||
+ | !style="width:10%"|이름||style="width:90%"|의견 | ||
+ | |- | ||
+ | |강혜원 || 같은 '권'에 포함되는 기사라도, 각기 별도로 구체적인 특정 기사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선조실록』7권"이라고만 표기하는 것은 정보제공의 의미가 없습니다. | ||
+ | |} | ||
+ | |||
+ | * 조선왕조실록 이외에 『삼국사기』나 『고려사의』경우는 권별이 표시되는 경우만 표시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 ||
+ | |||
+ | ==2017.09.13. 학술 발표회 자료의 경우== | ||
+ | *''''한국학대학원 학위논문작성법''''에서, 미간행 논문 혹은 '''학술대회 발표 논문'''일 경우는 '''기존의 표기원칙에 준하되 기관이나 장소 및 날짜를 기재'''한다고 하였으므로, ''''한국학대학원 학위논문작성법''''의 예시를 참고하여 아래와 같이 작성해 보았습니다.(서동신) | ||
+ | **예시 : 백영빈, 「[http://jsg.aks.ac.kr/home/event/conferenceView.do?searchCondition=&searchWord=&page=4&idx=24 오륜행실도 십폭병(1)]」, 제3회 장서각 금요강독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10월 7일(, ○쪽). | ||
+ | |||
+ | |||
+ | [[분류:프로젝트관리]] |
2017년 9월 13일 (수) 14:41 기준 최신판
목차
추가 검토사항
- 오프라인 문화재 안내판 내용을 인용한 경우
- 예: 경상남도,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재 안내판.
- 작성일을 표시하는 위치
- 개별 기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기사명과 DB명 사이에 작성일을 표시하기.
- 예: Last Name, First Name or Institution, « Title of the document ». Date of publication, update or revision. Database. Access date optionally. URL or identification number provided with the source.
- last accessed / last retrieved 의 표현 정하기.
- 온라인 참조의 경우 "연결 표현" 확정하기. ---- 현재는 "온라인 참조: "
- 민백을 데이터베이스명으로 볼 것인지를 정해서 표현 통일하기.
- 온라인 저작물을 다른 DB에서 활용한 경우. ---- "온라인 참조: " 또는 semi-colon only ??
- "민영환 집 터",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문화콘텐츠닷컴 』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온라인 참조: "민영환 집 터", 문화원형백과,『네이버지식백과』online . 최종확인: 2017년 02월 15일.
- "민영환 집 터",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토론 내용
- DB명에 대해서 문서명을 작은따옴표로 표현하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점도 유념해야겠네요. 기존에는 모든 문서명에 큰따옴표를 썼기에 일단 기록해 놓습니다.
이름 | 의견 |
---|---|
강혜원 | 이 부분은 단순히 교수님께서 큰따옴표를 작은따옴표로 잘못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참고하고 있는 자료에도 모두 큰따옴표를 사용하고 있고, 교수님께서 샘플로 작성하신 "Encyves 기사 표준 형식"에도 모두 큰따옴표로 쓰셨습니다. |
-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활용한 경우에 대해서도 지침과 예시를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우선 사료의 경우, 다음과 같이 표기하기로 되어 있어요.
- 『正祖實錄』 9년(1785) 4월 戊子(또는 일자): 「掌令柳河源上疏」.
- 순수하게 이 방식만을 그대로 준용해서 표현하면 아래와 같겠지요.
- 『중종실록』 12년(1517) 12월 13일: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밀양부에 아비를 죽인 자식 박군효에 대해 치계하다」.
- 여기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온라인서비스로부터 참고했다는 내용을 추가하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 『중종실록』 12년(1517) 12월 13일. 온라인 참조: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밀양부에 아비를 죽인 자식 박군효에 대해 치계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최종확인: 2017년 04월 06일.
- 『중종실록』 12년(1517) 12월 13일. 온라인 참조: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밀양부에 아비를 죽인 자식 박군효에 대해 치계하다',
- 기존의 '출처 밝히기' 지침들 중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추정해서 적어본 것이고요, 이 경우와 관련해서 재검토 후 지침과 예시를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우선 사료의 경우, 다음과 같이 표기하기로 되어 있어요.
이름 | 의견 |
---|---|
강혜원 | 이 부분도 교수님께서 샘플로 작성하신 "Encyves 기사 표준 형식" 중 정순왕후의 혼례식 - 왕실의 혼례 절차와 복식 기사를 참고해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
2017년 4월 22일 사료 출처에 대해서
- 사료 출처 관에서 한가지 말씀드립니다. 본래 조선왕조 실록인 경우 중국연호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분명 정통성 관련해서 한국사 측에서 말이 많아서 중국년호를 빼는 대신 차라리 왕 재위년호를 실록 뒤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표기하는게 기존 사학계 입장입니다.
- 조선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4월 9일(무자) 1번째 기사
- 조선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4월 9일(무자) "이의행이 홍복영 등 역적들에 대한 형전을 강화할 것을 청하다."
- 이렇게 위 두 가지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을 병기해도 무방하고 빼도 되는데 왕조를 표시하는 이유는 명이나 청 실록에서도 똑같은 시호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려사 삼국시대 대부분 사료의 성격상 세부 항목도 표시하면 좋으나 권까지 표시해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아래 예를 들면
- 『삼국사기』권6, 「신라본기」제6, 문무왕 1년(661) 6월, "숙위 인문과 유돈 등이 황제의 명령을 전하다." : 날짜(일)가 미정이기에 바로 기사 제목을 붙임
- 『고려사』권2, 「세가」 권2, 광종 4년(953), "후주에서 왕을 책봉하다." : 월과 일이 미상이기에 기사 제목을 바로 붙임.
-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한국사는 대부분 고서들이 국사편찬의원회 사이트에서 서비스가 되어있고, 권 월 일 기사로 분류되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실록이나 기사류 사료뿐만 아니라 일반 고문서 사료도 책이 한 권이면 가능하나 총서일 경우 책 자체를 표시하고 바로 그 뒤에 권을 붙이는 방식이 더 깔끔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름 | 의견 |
---|---|
강혜원 | 위의 실록 전거 내용을 참고해서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제시했던 한중연 학위 논문의 전거 표시 방법에서는 원래 중국 연호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신 이유 또는 근거가 있으시면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
2017년 4월 23일 사료 출처에 대해서
- 사료에서 역사적 개념이나 장소 사실을 검색할 때 여러가지 기사가 많게 뜰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이후 참고문헌 처리할 때 문제가 많은 데요.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2월 8일(기미) 1번째 기사.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4월 25일(갑술) 2번째 기사.
-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1573) 5월 6일(을유) 2번째 기사.
- 다음과 같이 위 3 기사인 경우는 모두 『선조실록』 7권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참고문헌 작성시 아래와 같이
- 『선조실록』 7권
- 이렇게 표시 할 수 있습니다.
이름 | 의견 |
---|---|
강혜원 | 같은 '권'에 포함되는 기사라도, 각기 별도로 구체적인 특정 기사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선조실록』7권"이라고만 표기하는 것은 정보제공의 의미가 없습니다. |
- 조선왕조실록 이외에 『삼국사기』나 『고려사의』경우는 권별이 표시되는 경우만 표시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2017.09.13. 학술 발표회 자료의 경우
- '한국학대학원 학위논문작성법'에서, 미간행 논문 혹은 학술대회 발표 논문일 경우는 기존의 표기원칙에 준하되 기관이나 장소 및 날짜를 기재한다고 하였으므로, '한국학대학원 학위논문작성법'의 예시를 참고하여 아래와 같이 작성해 보았습니다.(서동신)
- 예시 : 백영빈, 「오륜행실도 십폭병(1)」, 제3회 장서각 금요강독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10월 7일(,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