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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獅子山門)을 개창한 인물은 지금의 [[영월 법흥사|법흥사(法興寺)]]인 [[영월 흥녕사지|사자산(獅子山) 흥녕선원(興寧禪院)]]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절중|징효대사 절중(澄曉大師 折中)]]이다. 산문의 개조(開祖)는 쌍봉화상(雙峰和尙)이라 불리는 [[도윤|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윤]]이 주로 머물면서 활동했던 곳은 이름에서 드러나는 거서럼 [[화순 쌍봉사|쌍봉사(雙峰寺)]]다. 제자가 다른 곳에서 산문을 열었지만 그 정신이 스승으로부터 왔음을 천명하고 스승의 이름으로 개창한 것이다.<ref>이일야, "사자산문",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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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獅子山門)을 개창한 인물은 지금의 [[영월 법흥사|법흥사(法興寺)]]인 [[영월 흥녕사지|사자산(獅子山) 흥녕선원(興寧禪院)]]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절중|징효대사 절중(澄曉大師 折中)]]이다. 산문의 개조(開祖)는 쌍봉화상(雙峰和尙)이라 불리는 [[도윤|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윤]]이 주로 머물면서 활동했던 곳은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화순 쌍봉사|쌍봉사(雙峰寺)]]다. 제자가 다른 곳에서 산문을 열었지만 그 정신이 스승으로부터 왔음을 천명하고 스승의 이름으로 개창한 것이다.<ref>이일야, "사자산문",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ref>
  
 
[[도윤]]은 825년([[신라 헌덕왕|헌덕왕]] 17) 당나라로 건너가서 [[보원|보원(普願)]]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신라 문성왕|문성왕]] 9) 귀국하였으며, [[화순 쌍봉사|쌍봉사]]에 머물면서 크게 선법을 떨쳤다. [[도윤]]의 뒤를 이은 [[절중]]은 [[신라 헌강왕|헌강왕]] 때 강원도 영월군의 [[영월 흥녕사지|흥녕선원]]에 자리를 잡고 스승으로부터 이은 선법을 크게 선양하여 사자산파를 선종의 일문파로서 확립시켰다.<ref>김영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917 사자산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절중]]의 제자에는 [[경유|경유(慶猷)]], [[여종|여종(如宗)]] 등이 있다.<ref>김두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926 선종구산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도윤]]은 825년([[신라 헌덕왕|헌덕왕]] 17) 당나라로 건너가서 [[보원|보원(普願)]]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신라 문성왕|문성왕]] 9) 귀국하였으며, [[화순 쌍봉사|쌍봉사]]에 머물면서 크게 선법을 떨쳤다. [[도윤]]의 뒤를 이은 [[절중]]은 [[신라 헌강왕|헌강왕]] 때 강원도 영월군의 [[영월 흥녕사지|흥녕선원]]에 자리를 잡고 스승으로부터 이은 선법을 크게 선양하여 사자산파를 선종의 일문파로서 확립시켰다.<ref>김영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917 사자산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절중]]의 제자에는 [[경유|경유(慶猷)]], [[여종|여종(如宗)]] 등이 있다.<ref>김두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926 선종구산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2017년 9월 10일 (일) 21:05 판

사자산문
(獅子山門)
대표명칭 사자산문
한자표기 獅子山門
이칭 사자산파(獅子山派)
관련개념 구산선문(九山禪門)



정의

강원도 영월의 사자산(獅子山) 흥녕선원(興寧禪院)를 중심으로 일어난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의 하나.

내용

형성과 전개

사자산문(獅子山門)을 개창한 인물은 지금의 법흥사(法興寺)사자산(獅子山) 흥녕선원(興寧禪院)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징효대사 절중(澄曉大師 折中)이다. 산문의 개조(開祖)는 쌍봉화상(雙峰和尙)이라 불리는 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윤이 주로 머물면서 활동했던 곳은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쌍봉사(雙峰寺)다. 제자가 다른 곳에서 산문을 열었지만 그 정신이 스승으로부터 왔음을 천명하고 스승의 이름으로 개창한 것이다.[1]

도윤은 825년(헌덕왕 17) 당나라로 건너가서 보원(普願)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문성왕 9) 귀국하였으며, 쌍봉사에 머물면서 크게 선법을 떨쳤다. 도윤의 뒤를 이은 절중헌강왕 때 강원도 영월군의 흥녕선원에 자리를 잡고 스승으로부터 이은 선법을 크게 선양하여 사자산파를 선종의 일문파로서 확립시켰다.[2] 절중의 제자에는 경유(慶猷), 여종(如宗) 등이 있다.[3]

다른 산문과의 교류

절중도윤의 법을 이었으면서도, 자인(慈仁)이나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과의 교류를 통해 성주산문(聖住山門)과 관련을 맺었다. 또한 개청의 제자인 홍림(弘琳)과 교류가 있던 것으로 보아 사자산문은 주위의 여러 산문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4]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구산선문 사자산문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사자산문 도윤 A는 B가 개창하였다 A ekc:founder B
사자산문 절중 A는 B가 중창하였다 A ekc:renovator B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절중 A는 B를 위한 비이다 A ekc:isSteleOf B
영월 징효국사부도 절중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A ekc:isStupaOf B
절중 영월 흥녕선원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A edm:isRelatedTo B
도윤 화순 쌍봉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A edm:isRelatedTo B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도윤 A는 B를 위한 비이다 A ekc:isSteleOf B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도윤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A ekc:isStupaOf B
도일 보원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보원 도윤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도윤 절중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영월 법흥사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월 징효국사부도 영월 법흥사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화순 쌍봉사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월 법흥사 영월 흥녕선원 A는 B의 터이다 A edm:isRelatedTo B
절중 경유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개성 오룡사 법경대사비 경유 A는 B를 위한 비이다 A ekc:isSteleOf B
절중 자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절중 대통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825년 도윤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남.
847년 도윤이 귀국함.
868년 도윤화순 쌍봉사에서 입적함.
847년 절중이 스승 도윤을 만남.
882년 절중영월 흥녕선원에 주석함.

시각자료

주석

  1. 이일야, "사자산문",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180쪽.
  2. 김영태, "사자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김두진, "선종구산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구산선문의 형성과 전개", 『한국 불교사 - 조계종사를 중심으로』, (주)조계종출판사, 2015, 91-92쪽.

참고문헌

  • 김두진, "선종구산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영태, "사자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구산선문의 형성과 전개", 『한국 불교사 - 조계종사를 중심으로』, (주)조계종출판사, 2015, 83-99쪽.
  • 박정주, 「신라말 고려초 사자산문과 정치세력」, 『진단학보』No.77, 진단학회, 1994, 1-36쪽.
  • 신영문, 「나말려초 사자산문의 사상과 그 성격」, 『북악사론』Vol.9, 북악사학회, 2002, 107-149쪽.
  • 이일야, "사자산문",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177-205쪽.
  • 이희재, 「사자산문의 선(禪)과 현대적 의의」, 『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지』Vol.18 No.1, 한국교수불자연합회, 2012, 269-286쪽.
  • 조범환, 「신라 하대 도윤선사와 사자산문의 개창」, 『신라사학보』No.10, 신라사학회, 2007, 223-252쪽.
  • 최연식, 「사자산 선문의 성립과정에 대한 재검토」, 『불교학연구』Vol.21, 불교학연구회, 2008, 219-257쪽.
  • 최인표, 「나말려초 사자산문의 동향」, 『한국전통문화연구』Vol.11,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6, 225-2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