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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9일 (화) 23:29 판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親祀圓丘時 省牲器 省鼎鑊 視滌漑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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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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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親祀圓丘時 省牲器 省鼎鑊 視滌漑儀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가례(대례) |
정의
환구단에 나가 제사에 쓸 희생(犧牲)과 제기(祭器)를 살피고, 솥을 세척하는 것을 살피는 의식이다.[1]
내용
제사 1일 전, 자리를 설치하고, 당일 왕이 궁을 나와 환구단에 이르러 대차(大次)로 들어가고, 왕세자도 차(次)로 들어간다. 중엄을 아뢰면, 왕이 면복 차림으로 나와 규(왕실남성)를 잡고, 왕세자도 같다. 왕이 환구단에 나아가 제기 씻는 것을 살피고, 희생을 살피고, 정(鼎)과 확(鑊)을 씻는 것을 살피고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청결함을 고하면 대차로 간다. 왕이 규(왕실남성)를 내려놓고 대차로 들어가면, 왕세자도 규(왕실남성)를 내려놓고 차로 들어간다. 포시(晡時, 신시)에 희생을 베면 축사가 모혈반(毛血槃, 그릇)에 털과 피를 받아 제찬(祭饌)을 만드는 장소에 두고, 희생을 삶는다.[2] 이때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기 전이기 때문에 9장문이 있는 왕의 대례복을 착용한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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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A는 B를 거행한다 |
왕세자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A는 B를 거행한다 |
고종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A는 B를 거행한다 |
백관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A는 B를 참여한다 |
황제등극례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B는 A에 포함된다 |
왕 | 왕의 대례복 | A는 B을 착용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82쪽.
- ↑ 『고종대례의궤』 「儀註帙」 ‘親臨誓戒儀’
- ↑ 국립고궁박물원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0, 269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대한예전(大韓禮典)』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국립고궁박물원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0.
-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 김문식, 「장지연이 편찬한 『대한예전』」, 『문헌과 해석』 35, 문헌과 해석사, 2006.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2000.
- 김지영ㆍ김문식 외 4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이민원, 『한국의 황제』, 대원사, 2001.
- 이욱, 「대한제국기 환구제(圜丘祭)에 관한 연구」, 『종교연구』 30, 한국종교학회, 2003.
- 임민혁, 「대한제국기 大韓禮典의 편찬과 황제국 의례」, 『역사와 실학』 제34집, 역사실학회, 2007.
- 전통예술원 음악사료강독회, 『(국역) 高宗大禮儀軌』, 민속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