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
(→극락보전 안의 벽화들) |
||
40번째 줄: | 40번째 줄: | ||
극락보전은 1934년 일제에 의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신정일] | 극락보전은 1934년 일제에 의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신정일] | ||
− | |||
− | |||
− | |||
− | |||
− | |||
− | |||
− | |||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선비 같은 무위사의 극락보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선비 같은 무위사의 극락보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 ||
− | |||
− | |||
=='''지식관계망'''== | =='''지식관계망'''== |
2017년 8월 28일 (월) 17:41 판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
|
대표명칭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
한자표기 |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
영문명칭 | Geungnakbojeon Hall of Muwisa Temple, Gangjin |
지정번호 | 국보 제13호 |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소장처 | 강진 무위사 |
|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無爲寺)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불전.
내용
무위사에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1555년(명종 10) 4창할 때 건립된 것인데, 이 극락전만큼은 1956년경 수리공사를 하던 중 본존불 뒷벽의 벽화 아래 서쪽에 쓰인 연기문(緣起文)을 통하여 1476년(성종 7) 이전에 지어진 건물임이 밝혀졌다.
건물 안 뒤쪽 중앙부에 불단을 마련하여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을 봉안하였고, 그 뒷벽에는 1476년(성종 7)에 조성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측면 벽에도 조선 전기 작품으로 보이는 벽화들이 있었는데 해체 수리하면서 벽체 그대로 뜯어내 보존 전시하고 있다.[민백]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1430년(세종 12)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식이다.[문재]
극락보전 안의 벽화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문재]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문재]
극락보전은 1934년 일제에 의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신정일]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선비 같은 무위사의 극락보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