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제천 월광사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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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 15:20 판

제천 월광사지
(堤川 月光寺址)
대표명칭 제천 월광사지
한자 堤川 月光寺址
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9
문화재 지정번호 기념물 제154호
문화재 지정일 2012년 11월 2일
창건자 도증(道證)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절터.

내용

역사

월광사(月光寺)는 신라 효소왕 때의 승려 도증(道證)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제자인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가 머물렀던 곳이다.[1]

월광사는 법상종 계열로 존속하다가 경문왕 때에 대통이 선사상을 전파하면서 선종계 사찰로 바뀌었다. 절터 초입 송계계곡에서 고려 시대에 제작된 대불정주비(大佛頂呪碑)가 발견되어 고려 시대에도 선종 계통의 사찰로 법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 조선 시대 기와편과 백자편이 수습되는 점을 볼 때 조선 전기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

월광사 경내에 있던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寺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는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재와 석축이 남아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와·자기 조각 등이 산재해있다.[3]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도중 제천 월광사지 A는 B를 창건하였다
대통 제천 월광사지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제천 월광사지 원량선사탑비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있다

시각자료

주석

  1.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김인한, "제천 월광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인한, "제천 월광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