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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 15:19 판
제천 월광사지 (堤川 月光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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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제천 월광사지 |
---|---|
한자 | 堤川 月光寺址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9 |
문화재 지정번호 | 기념물 제154호 |
문화재 지정일 | 2012년 11월 2일 |
창건자 | 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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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절터.
내용
역사
월광사(月光寺)는 신라 효소왕 때의 승려 도증(道證)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제자인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가 머물렀던 곳이다.[1]
월광사는 법상종 계열로 존속하다가 경문왕 때에 대통이 선사상을 전파하면서 선종계 사찰로 바뀌었다. 절터 초입 송계계곡에서 고려 시대에 제작된 대불정주비(大佛頂呪碑)가 발견되어 고려 시대에도 선종 계통의 사찰로 법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 조선 시대 기와편과 백자편이 수습되는 점을 볼 때 조선 전기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
월광사 경내에 있던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寺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는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재와 석축이 남아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와·자기 조각 등이 산재해있다.[3]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도중 | 제천 월광사지 | A는 B를 창건하였다 | |
대통 | 제천 월광사지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제천 월광사지 원량선사탑비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인한, "제천 월광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