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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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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獅子國)에는 여래발(如來鉢)과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데, 바리때는 그 한 바리때의 밥을 가지고 1만 명의 중을 능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부처님의 발자국은 때때로 빛을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다 우러러 구경하고 절하였다. 마리야라국(麽哩耶囉國)에서는 범지(梵志)를 신앙하였으므로 나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차라박국(哆囉縛國)에서는 정도(正道)와 사교(邪敎)를 함께 믿고 있었다. 내가 좌석에 기대앉아서 말을 하니 여승 중에 말없이 뜻이 서로 통하는 자가 있었다. 가라나국(迦羅那國)도 또한 외도를 신앙하였다. 그곳 왕이 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자국(獅子國)에는 여래발(如來鉢)과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데, 바리때는 그 한 바리때의 밥을 가지고 1만 명의 중을 능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부처님의 발자국은 때때로 빛을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다 우러러 구경하고 절하였다. 마리야라국(麽哩耶囉國)에서는 범지(梵志)를 신앙하였으므로 나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차라박국(哆囉縛國)에서는 정도(正道)와 사교(邪敎)를 함께 믿고 있었다. 내가 좌석에 기대앉아서 말을 하니 여승 중에 말없이 뜻이 서로 통하는 자가 있었다. 가라나국(迦羅那國)도 또한 외도를 신앙하였다. 그곳 왕이 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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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몸으로 굶주림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들 과일을 씹으면서 서번(西蕃)의 국경에 도달하였다. 내가 중국에 교화를 펼 때, 북인도(北印度)의 마가반특달(摩訶班特達)을 서번(西蕃)에서 만나 함께 연경에 도착하였다.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서쪽으로 안서왕(安西王)이 부중(府中)에 노닐었다.  
 
외로운 몸으로 굶주림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들 과일을 씹으면서 서번(西蕃)의 국경에 도달하였다. 내가 중국에 교화를 펼 때, 북인도(北印度)의 마가반특달(摩訶班特達)을 서번(西蕃)에서 만나 함께 연경에 도착하였다.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서쪽으로 안서왕(安西王)이 부중(府中)에 노닐었다.  

2017년 8월 16일 (수) 00:49 판

지공(指空)
BHST Monk1.png
대표명칭 지공
한자 指空
생몰년 ?-1363년
지공(指空)
제납박타(提納薄陀), 선현(禪賢), dhyāna-bhadra(산스크리트어)
출신지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승탑 지공선사부도및석등
승탑비 양주회암사지공선사부도비



정의

고려 시대의 인도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공은 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본명은 산스크리트어 dhyāna-bhadra, 제납박타(提納薄陀)라고 음사, 선현(禪賢)이라 번역한다. 중인도(中印度)지역의 마갈타국왕(摩竭陀國王) 만(滿, pūrṇa)의 셋째 아들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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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증조의 휘(諱)는 사자협(師子脇)이고 나의 조(祖)의 휘는 곡반(斛飯)이며 모두 가비라국(伽毗羅國)의 왕이다. 나의 아버지의 휘는 만(滿)이며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왕이다. 나의 어머니는 향지국공주(香志國公主)이며, 나의 두 형은 실리가라파(悉利伽羅婆)와 실리마니(悉利摩尼)이다. 나의 부모가 동방(東方)의 대위덕신(大威德神)에게 기도하여 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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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출가수행

8세에 나란타사(那爛陀寺)의 율현(律賢, vinaya-bhadra)에게 출가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을 배운다. 19세에 남인도 길상산(吉祥山)에 가서 보명(普明, samanta-prabhāsa)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아 서천(西天) 제108조(祖)가 되고, 호(號)를 지공(指空, śūnyā-diśya)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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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에 스승에게 가서 나라의 글과 외국의 학문을 배웠으며, 대강 그 대의(大義)만을 깨닫고는 버리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는데 의약(醫藥)의 효력이 없었다.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적자(嫡子)가 중이 되면 임금이 병이 완쾌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물었다. 내가 즉시 응낙하니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여, 나의 아명(兒名)을 불러 말하기를, “누달라치파(婁怛囉哆婆)야 네가 능히 할 수 있느냐.” 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아들이라 하여 처음에는 매우 난처하게 여겼으나, 마침내 아쉬움을 참고 중으로 내주기를 원하게 되어서 아버지의 병이 금방 나았다. 8세에 삼의(三衣 비구가 입는 세 가지 옷, 즉 승가리(僧伽梨)ㆍ중의(重衣)ㆍ대의(大衣))를 잦추고, 나란타사(那蘭陁寺)의 강사(講師) 율현(律賢)의 문하에 보내어 머리를 깎고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을 배우다가 얻음이 있는 것 같아서 제불(諸佛)과 중생의 허(虛)와 공(空) 두 경계를 물으니 강사가 말하기를,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것이 참 반야(盤若)인 것이다. 남인도(南印度)의 능가국(愣伽國) 길상산(吉祥山) 보명(菩明)에게 가면 심오한 뜻을 궁극히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때 나의 나이는 1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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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법유학

사자국(師子國)에 갔다가 북쪽으로 편력하여 서역(西域)을 거쳐 1324년경에 원(元)의 연경(燕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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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獅子國)에는 여래발(如來鉢)과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데, 바리때는 그 한 바리때의 밥을 가지고 1만 명의 중을 능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부처님의 발자국은 때때로 빛을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다 우러러 구경하고 절하였다. 마리야라국(麽哩耶囉國)에서는 범지(梵志)를 신앙하였으므로 나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차라박국(哆囉縛國)에서는 정도(正道)와 사교(邪敎)를 함께 믿고 있었다. 내가 좌석에 기대앉아서 말을 하니 여승 중에 말없이 뜻이 서로 통하는 자가 있었다. 가라나국(迦羅那國)도 또한 외도를 신앙하였다. 그곳 왕이 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중략)...

외로운 몸으로 굶주림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들 과일을 씹으면서 서번(西蕃)의 국경에 도달하였다. 내가 중국에 교화를 펼 때, 북인도(北印度)의 마가반특달(摩訶班特達)을 서번(西蕃)에서 만나 함께 연경에 도착하였다.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서쪽으로 안서왕(安西王)이 부중(府中)에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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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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