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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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눌은 8세의 어린나이에 출가하게 된다.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 종휘선사(宗暉禪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한 스승, 한 종파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으며 오직 진리를 따랐고, 지조(志操)는 뛰어나 훤칠하였다”한다. 지눌은 25세(1182년)에 승선(僧選)에 합격한다. | + | 지눌은 8세의 어린나이에 출가하게 된다.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 종휘선사(宗暉禪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한 스승, 한 종파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으며 오직 진리를 따랐고, 지조(志操)는 뛰어나 훤칠하였다”한다. 지눌은 25세(1182년)에 승선(僧選)에 합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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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에 조계종(曹溪宗)의 운손(雲孫)인 종휘선사(宗暉禪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 이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다음, 불교를 수학(受學)하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지조가 고매(高邁)하여 무리 중에서 뛰어났다. | 8살 때에 조계종(曹溪宗)의 운손(雲孫)인 종휘선사(宗暉禪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 이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다음, 불교를 수학(受學)하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지조가 고매(高邁)하여 무리 중에서 뛰어났다. |
2017년 8월 15일 (화) 13:54 판
지눌(知訥) | |
대표명칭 | 지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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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知訥 |
생몰년 | 1158년(의종 12)-1210년(희종 6) |
시호 | 불일보조(佛日普照) |
호 | 목우자(牧牛子) |
탑호 | 감로(甘露) |
성씨 | 정씨(鄭氏) |
출신지 | 황해도 서흥(瑞興) |
승탑 | 송광사보조국사비 |
승탑비 | 순천송광사보조국사감로탑 |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눌은 1158년(의종 12)에 황해도 서흥군 (당시 경서의 동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학의 학정(學正)을 지낸 정광우(鄭光遇)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많아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으므로, 그의 부모가 부처에게 기도하여 스님을 만들기로 하자 이내 병이 나았다.[1]
출가수행
지눌은 8세의 어린나이에 출가하게 된다.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 종휘선사(宗暉禪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한 스승, 한 종파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으며 오직 진리를 따랐고, 지조(志操)는 뛰어나 훤칠하였다”한다. 지눌은 25세(1182년)에 승선(僧選)에 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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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 김보혜, 10쪽
참고문헌
- 이종익, "지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심재룡, 『지눌연구 : 보조선과 한국불교』,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 강건기,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 불일 보조 스님 이야기』, 불일출판사, 2010.
- 정안스님, 이용운,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96> 보조지눌(普照知訥), 불교신문, 2017.03.13.
-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편 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5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