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도감사제청의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관계정보) |
(→해제) |
||
29번째 줄: | 29번째 줄: | ||
===해제=== | ===해제=== | ||
− | [http://kyujanggak.snu.ac.kr/home/ | + | [http://kyujanggak.snu.ac.kr/home/center/inspection/ins_viewDetail.jsp?setid=766364&pos=0&total_df=1&uci=GK14556_00&c1=&c2=&c3=&sType=&sWord=%EC%98%81%EC%A0%91%EB%8F%84%EA%B0%90%EC%82%AC%EC%A0%9C%EC%B2%AD%EC%9D%98%EA%B6%A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해제]<br/> |
===판본=== | ===판본=== |
2017년 8월 12일 (토) 17:08 판
영접도감사제청의궤 (迎接都監賜祭廳儀軌) |
|
대표명칭 | 영접도감사제청의궤 |
---|---|
한자표기 | 迎接都監賜祭廳儀軌 |
주제 | 빈례(賓禮) |
작성주체 | 영접도감(迎接都監) |
의례담당자 | 이정구(李廷龜) |
작성지역 | 한성부 |
작성시기 | 1609년(광해군 01) |
소장처(원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 |
판본 | 필사본 |
표기문자 | 한자, 이두 |
수량 | 1책 117장 |
크기 | 36×29.5 |
도설 | 22면 |
반차도 | 20면 총 길이: 약 ㎝ |
정의
1609년(광해군1) 4월 선조의 국상(國喪)에 사제(賜祭)하려고 온 명나라 사신과, 같은 해 6월 광해군의 책봉을 전하기 위해 온 명나라 사신의 영접을 위해, 1608년(광해군 즉위) 5월에 설치된 영접도감(迎接都監)의 사제청(賜祭廳)에서 수행한 업무를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사행(使行)은 1609년(광해군 1) 4월 8일 압록강을 건너, 4월 25일 북경에 들어갔으며, 5월 6일 돌아와, 5월 15일 다시 압록강을 건너갔다. 『영접도감도청의궤(迎接都監都廳儀軌)』(奎14545)에는 5월 18일에 압록강을 건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선조의 사제(賜祭)가 1609년(광해군1) 5월 3일 축시(丑時)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
목록
목록은 없으며, 내용으로 구분하면 사신(使臣)의 이름, 사신의 일정, 좌목(座目), 계사(啓辭), 감결(甘結), 반차도(班次圖)의 순서이다.
해제
판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奎 1455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영접도감사제청의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
영접도감사제청의궤 | 빈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608년 5월 | 영접도감이 설치됐다 |
1609년 4월 8일 | 사신이 압록강을 건넜다 |
1609년 4월 25일 | 사신이 북경에 들어갔다 |
1609년 5월 3일 | 선조의 사제가 거행됐다 |
1609년 5월 15일 |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들어왔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9470 | 126.991007 | 창경궁 인정전에서 사제가 거행됐다 |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분류별의궤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3)』,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