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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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 | + | '''진주성싸움'''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5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강대운]] 화백의 작품이다.<br/> |
− | + | 민족기록화 전승편 20작품 중 하나로,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0월 1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의 관군과 2만여명의 백성들을 지휘하여 [[진주성]]을 공격하던 왜군을 격파하여 곡창지대인 호남 진출을 막아낸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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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최대섭]] 화백의 작품으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 속 인물은 [[고려]] 후기 왜구를 토벌한 무신인 [[최무선]]으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최대섭]] 화백의 작품으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 속 인물은 [[고려]] 후기 왜구를 토벌한 무신인 [[최무선]]으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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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1380년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온 [[진포대첩]]때 원수 [[나세|나세(羅世)]], [[심덕부|심덕부(沈德符)]]와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선박을 이끌고 나가 싸워 큰 공을 세웠다.<br/> | 뿐만 아니라 1380년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온 [[진포대첩]]때 원수 [[나세|나세(羅世)]], [[심덕부|심덕부(沈德符)]]와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선박을 이끌고 나가 싸워 큰 공을 세웠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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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span style="color: red">''mascheck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플래시에 대한 고민 -> 원래는 mascheck를 이용하였으나, 기술적 논의 후 민족기록화에 그려진 노드를 클릭하여 해당 노드 위키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프래쉬를 넣고자 함'' - [[민족기록화 작품 시각화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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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식'''== | ||
+ | 일반적인 민족기록화의 경우 주요 장수나 아군을 중앙에 배치하여 중심으로 삼고 아군의 시점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추격하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원근감을 이용하여 화폭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하단의 중앙에는 일본의 전통 투구인 가부토를 쓴 귀신 모양을 한 왜장이 한손에는 흰 빛의 일본도를 치켜 들고 있는 장면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왜장이 탄 말은 사나운 표정으로 울부짖고 있고, 왜장의 왼편에는 등 뒤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아 가는 왜병의 모습과 쓰려져 가는 말을 표현하였다. | ||
+ | 오른편에는 불길에 휩싸여 말 발굽에 치이는 반라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왼편 하단에는 적병의 시신이 겹겹이 쓰러져 있는 모양을 짙은 색으로, 불화살 공격으로 화염속에 타들어 가는 왜병들의 모습을 붉은 색을 사용하여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림 전체에서 왜군들은 반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 ||
+ | 1차 [[진주성싸움]]에서 왜군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와 나무 방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는데,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대나무 방패 뒤에 숨어 성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는 왜군과 사다리를 타고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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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의 상단의 왼쪽 끝에는 푸른 색으로 칠해진 남강이 보이고 왜군의 주요 공격 지점이었던 동문과 북문을 두축으로 성을 공격하는 적군에 각종 무기로 반격하는 조선군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는 왜군을 향해 끊는 물을 붓고 화살을 아끼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김시민 장군은 백성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기(軍旗)를 여럿 세워 병력을 많아 보이게 하는 심리전을 걸었는데, 그림에서도 성안에 노랑,파랑,적색의 용대기들이 수 없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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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 red">''11월 8일 교수님 조언대로, 작품 기사 관련하여 어떤 작가가 언제 어떤식으로 어떤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기재하고, 작품의 배경지식 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을 담고자 함. / <span style="color: black">김정화 교수님<span style="color: red">께 민족기록화의 회화성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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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민족기록화'''== | ||
+ | 고려시대 배경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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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이인영-안융진담판(서희)-1976s.jpg|[[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 ||
+ | 파일:이용환-귀주대첩(강감찬)-1975s.jpg|[[이용환-귀주대첩]] | ||
+ | 파일:안재후-여진정벌(윤관)-1975s.jpg|[[안재후-여진정벌]] | ||
+ | 파일:김서봉-삼별초대몽항쟁-1975s.jpg|[[김서봉-삼별초의 대몽항전]] | ||
+ | 파일:김태-오라산성함락(이성계)-1975s.jpg|[[김태-동령부 오라산성의 공함]] | ||
+ | 파일:문학진-쌍성수복(유인우)-1975s.jpg|[[문학진-쌍성수복]] | ||
+ | 파일:박창돈-홍산전투(최영)-1976s.jpg|[[박창돈-최영장군의 홍산전투]] | ||
+ | 파일:박성환-예성강도-1978s.jpg|[[박성환-예성강도]] | ||
+ | 파일:최대섭-고려대장경판각-1977s.jpg|[[최대섭-고려대장경]] | ||
+ | 파일:문학진-고려청자-1977s.jpg|[[문학진-고려청자]] | ||
+ | 파일:최대섭-화약제조(최무선)-1979s.jpg|[[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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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출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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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관련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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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을 소재로 한다||[[화통도감]] |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을 소재로 한다||[[화통도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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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참고문헌'''== |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5180&cid=49345&categoryId=49345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5180&cid=49345&categoryId=49345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
+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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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 ||
− | [[분류:민족기록화]] | + | [[분류:민족기록화]][[분류:작품]][[분류:고려]] |
− | [[분류:작품]] |
2017년 1월 24일 (화) 00:56 판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
작가 | 최대섭 |
---|---|
제작연도 | 1979년 |
규격 | 300호(290.9x197cm) |
유형 | 고려 |
분류 | 유화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기존의 틀을 사용하지 않고, 민족기록화 작품 자체를 잘보여줄 수 있는 틀에 대한 고민필요
작품
진주성싸움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5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강대운 화백의 작품이다.
민족기록화 전승편 20작품 중 하나로,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0월 1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의 관군과 2만여명의 백성들을 지휘하여 진주성을 공격하던 왜군을 격파하여 곡창지대인 호남 진출을 막아낸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최대섭 화백의 작품으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 속 인물은 고려 후기 왜구를 토벌한 무신인 최무선으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그러나 화약 재료 가운데 하나인 염초는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에 따라 성능에도 차이가 많았다. 최무선은 염초 제작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이원(李元)으로부터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배워 드디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화약을 이용하여 화전(火箭)과 같은 간단한 무기를 실험해 본 결과 자신감을 얻은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무기를 연구하고 제조할 화통도감(火筒都監) 설치를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에 1377년(우왕 3)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약과 화약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최무선은 화통도감에서 총포류·발사류·로켓병기 등 모두 18종의 화약무기를 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1380년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온 진포대첩때 원수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와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선박을 이끌고 나가 싸워 큰 공을 세웠다.
mascheck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플래시에 대한 고민 -> 원래는 mascheck를 이용하였으나, 기술적 논의 후 민족기록화에 그려진 노드를 클릭하여 해당 노드 위키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프래쉬를 넣고자 함 - 민족기록화 작품 시각화 예시
형식
일반적인 민족기록화의 경우 주요 장수나 아군을 중앙에 배치하여 중심으로 삼고 아군의 시점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추격하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원근감을 이용하여 화폭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하단의 중앙에는 일본의 전통 투구인 가부토를 쓴 귀신 모양을 한 왜장이 한손에는 흰 빛의 일본도를 치켜 들고 있는 장면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왜장이 탄 말은 사나운 표정으로 울부짖고 있고, 왜장의 왼편에는 등 뒤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아 가는 왜병의 모습과 쓰려져 가는 말을 표현하였다. 오른편에는 불길에 휩싸여 말 발굽에 치이는 반라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왼편 하단에는 적병의 시신이 겹겹이 쓰러져 있는 모양을 짙은 색으로, 불화살 공격으로 화염속에 타들어 가는 왜병들의 모습을 붉은 색을 사용하여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림 전체에서 왜군들은 반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1차 진주성싸움에서 왜군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와 나무 방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는데,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대나무 방패 뒤에 숨어 성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는 왜군과 사다리를 타고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상단의 왼쪽 끝에는 푸른 색으로 칠해진 남강이 보이고 왜군의 주요 공격 지점이었던 동문과 북문을 두축으로 성을 공격하는 적군에 각종 무기로 반격하는 조선군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는 왜군을 향해 끊는 물을 붓고 화살을 아끼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김시민 장군은 백성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기(軍旗)를 여럿 세워 병력을 많아 보이게 하는 심리전을 걸었는데, 그림에서도 성안에 노랑,파랑,적색의 용대기들이 수 없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1월 8일 교수님 조언대로, 작품 기사 관련하여 어떤 작가가 언제 어떤식으로 어떤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기재하고, 작품의 배경지식 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을 담고자 함. / 김정화 교수님께 민족기록화의 회화성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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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배경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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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 관계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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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에 의해 그려지다 | 최대섭 |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에 소장되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을 소재로 한다 | 최무선 |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 ~을 소재로 한다 | 화통도감 |
참고문헌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