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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편찬한 [[임원준]]이 저술한 두창에 관한 의서이다.
 
[[조선 세조]] 때 편찬한 [[임원준]]이 저술한 두창에 관한 의서이다.
 
==내용==
 
==내용==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창진방(瘡疹方)』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세조]] 때 의원 교육교재로 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의과시험 교육서로 채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원들 간에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조선 선조]]대 1608년 [[허준|허준(許浚)]]은 이 책을 개편하여 『[[언해두창집요|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를 간행하였다.
 
 
==={{PAGENAME}}의 발간 경위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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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내에 전하여지는 창진집 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벽사 이우성 선생이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국내로 복사하여 가져와 영인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것은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맨 앞장에는 ‘稱意館藏書記’라는 장서인과 그 위에 ‘浙江圖書館珍藏善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창진집 이 어떠한 연유로 중국에 전해져 절강성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는 까닭에 그 자세한 사정은 파악할 수가 없다. 창진집 이 처음 편찬 간행되기 시작한 것을 서문 에서는 조선 초기 [[조선 세종|세종]] 때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연대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외에도 문집 등의 자료에서도 그 출간경위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의방유취]]』의 편찬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 세종]]대에 편찬이 완료된 창진집은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창진집은 이후 첨지중추원 [[이예손]]이 교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즉 창진집 은 [[조선 세종|세종]]대부터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조선 세조|세조]]대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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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내에 전하여지는 창진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벽사 [[이우성]] 선생이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국내로 복사하여 가져와 영인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것은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맨 앞장에는 ‘稱意館藏書記’라는 장서인과 그 위에 ‘浙江圖書館珍藏善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창진집 이 어떠한 연유로 중국에 전해져 절강성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는 까닭에 그 자세한 사정은 파악할 수가 없다. 창진집 이 처음 편찬 간행되기 시작한 것을 서문 에서는 조선 초기 [[조선 세종|세종]] 때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연대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외에도 문집 등의 자료에서도 그 출간경위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의방유취]]』의 편찬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 세종]]대에 편찬이 완료된 창진집은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창진집은 이후 첨지중추원 [[이예손]]이 교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즉 창진집 은 [[조선 세종|세종]]대부터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조선 세조|세조]]대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ref>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6쪽.</ref>
 
<ref>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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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진집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가론과 금기조항을 제외하고 두창의 발생에서부터 처방까지 총 9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창진집 상권에서는 창진에 관한 여러 의학자들의 논설을 엮은 제가론(諸家論)이 제일 처음에 나오며, 중권에서는 예방지제(預方之劑), 발출지제(發出之劑), 화해지제(和解之劑), 구함지제(救陷之劑), 소독지제(消毒之劑), 호안지제(護眼之劑)의 순서로, 하권에서는 최건진제(催乾之劑), 멸반지제(滅瘢之劑),통치지제(通治之劑), 금기(禁忌),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을 차례로 수록하였다. 그 내용은 각각 두창(창진)을 예방, 발진을 빨리 내게 한 이후 소멸시키고, 농을 소독하면서 그로 인한 상흔을 치료하는 법, 발진이 난 자리에 생기는 딱지를 말려 떨어지게 하는 방법,
 
창진집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가론과 금기조항을 제외하고 두창의 발생에서부터 처방까지 총 9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창진집 상권에서는 창진에 관한 여러 의학자들의 논설을 엮은 제가론(諸家論)이 제일 처음에 나오며, 중권에서는 예방지제(預方之劑), 발출지제(發出之劑), 화해지제(和解之劑), 구함지제(救陷之劑), 소독지제(消毒之劑), 호안지제(護眼之劑)의 순서로, 하권에서는 최건진제(催乾之劑), 멸반지제(滅瘢之劑),통치지제(通治之劑), 금기(禁忌),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을 차례로 수록하였다. 그 내용은 각각 두창(창진)을 예방, 발진을 빨리 내게 한 이후 소멸시키고, 농을 소독하면서 그로 인한 상흔을 치료하는 법, 발진이 난 자리에 생기는 딱지를 말려 떨어지게 하는 방법,
 
그리고 두창으로 인하여 눈을 상하지 않게 하는 법, 일반적인 치료 약 및 조선에서의 경험방 등이었다. 이러한 창진집 의 편성체제는 17세기 전반 [[허준]]에 의해서 『[[언해두창집요|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더욱 정리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창진집 은 적어도 두창(창진)에 대하여 『[[의방유취]]』 에서 수집되어진 의학들을 좀 더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었으며, 나아가 『[[언해두창집요|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ref>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8쪽.</ref>
 
그리고 두창으로 인하여 눈을 상하지 않게 하는 법, 일반적인 치료 약 및 조선에서의 경험방 등이었다. 이러한 창진집 의 편성체제는 17세기 전반 [[허준]]에 의해서 『[[언해두창집요|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더욱 정리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창진집 은 적어도 두창(창진)에 대하여 『[[의방유취]]』 에서 수집되어진 의학들을 좀 더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었으며, 나아가 『[[언해두창집요|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ref>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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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0일 (일) 15:39 판

창진집(瘡疹集)
대표명칭 창진집
한자표기 瘡疹集
이칭 창진방
유형 고서
저자 임원준
저술시기 세조 연간
간행시기 세조 연간
시대 조선


정의

조선 세조 때 편찬한 임원준이 저술한 두창에 관한 의서이다.

내용

창진집의 발간 경위와 발견

한동안 국내에 전하여지는 창진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벽사 이우성 선생이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국내로 복사하여 가져와 영인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것은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맨 앞장에는 ‘稱意館藏書記’라는 장서인과 그 위에 ‘浙江圖書館珍藏善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창진집 이 어떠한 연유로 중국에 전해져 절강성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는 까닭에 그 자세한 사정은 파악할 수가 없다. 창진집 이 처음 편찬 간행되기 시작한 것을 서문 에서는 조선 초기 세종 때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연대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외에도 문집 등의 자료에서도 그 출간경위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의방유취』의 편찬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 세종대에 편찬이 완료된 창진집은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창진집은 이후 첨지중추원 이예손이 교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즉 창진집 은 세종대부터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세조대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1]

창진집의 구성과 내용

창진집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가론과 금기조항을 제외하고 두창의 발생에서부터 처방까지 총 9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창진집 상권에서는 창진에 관한 여러 의학자들의 논설을 엮은 제가론(諸家論)이 제일 처음에 나오며, 중권에서는 예방지제(預方之劑), 발출지제(發出之劑), 화해지제(和解之劑), 구함지제(救陷之劑), 소독지제(消毒之劑), 호안지제(護眼之劑)의 순서로, 하권에서는 최건진제(催乾之劑), 멸반지제(滅瘢之劑),통치지제(通治之劑), 금기(禁忌),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을 차례로 수록하였다. 그 내용은 각각 두창(창진)을 예방, 발진을 빨리 내게 한 이후 소멸시키고, 농을 소독하면서 그로 인한 상흔을 치료하는 법, 발진이 난 자리에 생기는 딱지를 말려 떨어지게 하는 방법, 그리고 두창으로 인하여 눈을 상하지 않게 하는 법, 일반적인 치료 약 및 조선에서의 경험방 등이었다. 이러한 창진집 의 편성체제는 17세기 전반 허준에 의해서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더욱 정리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창진집 은 적어도 두창(창진)에 대하여 『의방유취』 에서 수집되어진 의학들을 좀 더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었으며, 나아가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창진집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 A는 B를 포함한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36.6491666 127.5099996 국립청주박물관에 창진집이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6쪽.
  2. 김성수, 「조선전기 두창의 유행과 《창진집》」, 『한국학의학연구원논문집』16, 2010, 38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