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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157 정리자(整理字)]", <html><online style="color:purpl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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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157 정리자(整理字)]", <html><online style="color:purpl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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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7일 (목) 10:20 판

틀:문화유산 유물정보

정의

1796년(정조 20)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1]

내용

정리자는 1795년(정조 19) 『정리의궤통편(整理儀軌通編)』을 출판하기 위해 만든 활자이다. 글씨체는 중국 청(淸)나라에서 만든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씨체를 바탕으로 한 인쇄체로 읽기에 편리하였다. 정리자는 이전에 만든 금속활자에 비해 활자모양이 반듯하고 높이도 일정하여 인쇄하기에도 편리하였다. 1857년(철종 8) 활자를 보관해두었던 주자소(鑄字所)에 불이 나 정리자가 불타버려 다음 해 다시 정리자를 만들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활자는 대부분 두 번째 만든 정리자이다.

사용처

첫번째 만든 정리자[初鑄整理字]는 주로 조선왕실에서 의궤를 편찬할 때 사용되었으며 두번째 만든 정리자[再鑄整理字]는 의궤 인쇄뿐만 아니라 구한말 발행한 교과서, 관보(官報), 법령, 조약문을 인쇄할 때도 널리 사용되었다.활자의 뒷면은 활의 등처럼 속으로 움푹 패여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활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청동의 사용량을 절약하면서 점착물이 그 속에 들어차면 움직이지 않도록 고안되었던 방법이다. [2]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리자 오륜행실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정리자 정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정리자 주자소 A는 B와 관련이 있다


주석

  1. "정리자(整理字)",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정리자 활자",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네이버 지식백과] online.

참고문헌

사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판당고(板堂考)
  • 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
  • 홍재전서(弘齋全書)

저서

  • 천혜봉,『한국전적인쇄사(韓國典籍印刷史)』, 범우사, 1990
  • 천혜봉,『한국고인쇄사(韓國古印刷史)』,한국도서관학연구회, 1976
  • 김두종,『한국고인쇄기술사(韓國古印刷技術史)』, 탐구당, 1974
  • 정지용, 『수향편(袖香編)』, 정지용, 동문사, 1971
  • 김원룡,「조선후기의 주자인쇄(鑄字印刷)」, 『향토서울』 7, 1959
  • 김두종,「한글활자고(活字考)」,『최현배환갑기념논문집』, 1954
  • 屈萬里·昌彼得, 『圖書板本學要略』, 中華文化出版事業委員會, 民國 44,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