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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6일 (수) 15:55 판
정의
화차 위에 중신기전(中神機箭)을 설치한 무기.
내용
중신기화차의 구조
문종시기(1450-1452)에 개발된 화차는 수레 자체에 작은 기둥을 세우고 그 밑에 바퀴를 부착시켰다. 이 역할은 발사각이 최대 43도까지 조절 할 수 있게 하여 발사체의 사거리를 조절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화차는 그 위에 여러가지 발사체를 설치 및 해체가 가능하였다. 만약 신기전이 발사체인 경우, 매우 큰 대신기전은 제외하고, 중신기전과 소신기전만 화차 위에 설치가 가능하였다.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단발로 화차에 설치 된 것은 아니고 중신기전은 40발 소신기전은 100발을 동시에 쏠수 있게 설치하였다. 그러므로 중신기화차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중신기전 이 설치된 화차인 것이다. [1]
중신기화차의 활용과 한계
신기전 설치 형태의 화차는 조선 중기 이후로 점점 사라져 가는데, 총통(銃筒)을 설치한 형태의 화차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늘어난다. 그 이유는 신기전 자체가 화약이 너무 많이 소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시기 로켓형 무기의 고질적인 문제는 날아가는 동안 바람이나 추진분사 기술의 미흡 때문에, 명중률이 매우 낮다. 이 이유로 사실 대신기전은 조선 초기에만 사용되었고,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은 발사 수량을 늘려서 명중률을 높혔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발사체를 소형 총통류로 바뀌게 되는데, 그 이유는 총통을 사용할 경우 한 총통에 15발정도의 소형 철환을 장전할 수 있어, 엄청난 수량의 탄막 공격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중신기화차보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점차 대체되어 중신기화차가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2]
시각자료
갤러리
중신기전 발사체인 중신기 화차 발사모습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논문
- 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 70, 1976, 15-88.
- 오경후, 「화차(火車)의 제조(製造)와 임란(壬亂) 정세(情勢)의 변화(變化)」, 『孔子學』, 21, 2011, 107-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