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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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8일 (수) 23:10 판


광다회
(廣多繪)
대표명칭 광다회
한자표기 廣多繪
구분 대
착용신분 왕,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광다회는 폭이 넓고 납작한 모양의 띠로 비단실을 두가닥 혹은 세가닥, 네가닥 등으로 엮어서 짠 것이다. 광다회는 조선시대 문무관료들이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경우 등에 입는 융복인 철릭에 주로 사용하였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왕,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도포, 학창의 등 포류를 입을 때 착용한다.

형태

실을 엮어 끈을 짠 것으로 광다회에 비해 얇고 좁으므로 세조대라 한다. 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서 마무리를 했는데 주로 도포, 전복 등과 같은 남자 옷 위에 착용하였다.[2]


기타

품계에 따라 색상을 달리 하였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1품에서 3품은 홍조아를, 4품에서 9품은 청조아를 띠도록 하였다. 또한 『고종실록』 고종 21년(1884)에는 당상관의 띠는 홍색과 자색, 당하관은 청색과 녹색, 유생은 혁대를 사용하도록 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밖에도 수많은 색이 있어 제도를 떠나 자유로이 선택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광다회 왕 A는 B를 착용하였다
광다회 왕세자 A는 B를 착용하였다
광다회 왕세손 A는 B를 착용하였다
광다회 도포 A는 B에 착용한다
광다회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120쪽.
  2.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446쪽.
  3.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446~447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