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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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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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 + | =='''시각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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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feren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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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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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36264&cid=55761&categoryId=55761 부도비]",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
+ | *조동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072 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 *이완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43 탑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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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승탑/작성중]] |
2017년 6월 18일 (일) 20:29 판
정의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1]
내용
-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66쪽.
- 탑비는 승려에게 시호와 탑호가 왕에 의해 하사되어야만 작성될 수 있었다. 고려 건국 직후 탑비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게 된 이유는 시호와 탑호를 내리는 왕이 신라의 왕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의 왕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수단의 하나로 이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70쪽.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
온라인 참조: "부도비",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