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옥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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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는 면복용 옥대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17세기 인조 때 처음 면복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례서에는 18세기 정조 때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841&cid=46649&categoryId=46649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6462&cid=46649&categoryId=46649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에 옥대가 기록되기 시작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4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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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는 면복용 옥대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17세기 인조 때 처음 면복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례서에는 18세기 정조 때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841&cid=46649&categoryId=46649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6462&cid=46649&categoryId=46649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에 옥대가 기록되기 시작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48쪽.</ref>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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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 (월) 22:23 판


옥대
(玉帶)
[[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옥대
한자표기 玉帶
착용신분 황제, , 황태자, 왕세자
착용성별 남성



정의

겉옷 위에 띠는 대이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황제, , 황태자, 왕세자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조선 초기에는 면복용 옥대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17세기 인조 때 처음 면복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례서에는 18세기 정조 때의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와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에 옥대가 기록되기 시작했다.[2]

형태

가죽으로 띠를 만들어 비단을 씌우고 그 위에 옥으로 된 과판을 붙여 장식한다. 왕의 옥대에는 대홍색 비단을, 왕세자의 옥대에는 흑색 비단을 사용했다. 왕의 옥대는 무늬를 아로새긴 옥으로 과판을 만들었다.

기타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옥대 A는 B를 착용하였다
옥대 왕세자 A는 B를 착용하였다
옥대 왕세손 A는 B를 착용하였다
옥대 A는 B에 착용한다
옥대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247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48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