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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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이]](채무이)의 계배(계배) [[순천김씨]](순천김씨)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1977년 충청북도 [[청주시 내수읍]]에 있던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한글편지 188건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120여 건으로 가장 많다. 이 한글편지들은 1550년대에서 1592년 사이에 쓴 것으로 현전하는 한글편지 중 매우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간 생활사, 여성사, 국어사, 서예사 등에서 주목받아온 자료이다. 특히 이 편지에는 시집간 딸을 그리워하는 모정과 함께 남편의 첩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74쪽.</REF> | [[채무이]](채무이)의 계배(계배) [[순천김씨]](순천김씨)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1977년 충청북도 [[청주시 내수읍]]에 있던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한글편지 188건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120여 건으로 가장 많다. 이 한글편지들은 1550년대에서 1592년 사이에 쓴 것으로 현전하는 한글편지 중 매우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간 생활사, 여성사, 국어사, 서예사 등에서 주목받아온 자료이다. 특히 이 편지에는 시집간 딸을 그리워하는 모정과 함께 남편의 첩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74쪽.</REF> | ||
− | == | + | ===편지 발굴의 의의=== |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성이 한글을 사용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궁중과 관련된 언문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계층상으로 보면 최상층인 비빈뿐 아니라 궁녀까지 국문을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2)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모든 궁녀들이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훈민정음이 보급된 것은 분명 아니었으며, 15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실록에서는 적지 않은 국문사용에 관련된 기록이 발견 되는데, 남녀 또는 궁궐 바깥의 일상생활 속으로 서서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71(선조4)년 정철의 어머니 ‘죽산안씨가 쓴 편지글’이 처음으로 발견되 더니 그 후 충북지역에서 ‘죽산안씨 편지글’보다 앞서 2년 이른 시기인 1569년(선조2) 에 작성된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이 발견 되었다.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에서 발굴한 편지는 [[신천강씨]]가 발신자인 한글 편지가 120여 통에 이르는데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사대부가 여성의 한글편지로서 당시 일반 여성의 한글 사용이 빈번하였음을 알수 있다.<ref>정복동, 「‘이응태묘 출토’한글 편지의 서체미 탐구」, 『저예학연구』 vol. 13, 한국서예학회, 2008</ref> |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성이 한글을 사용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궁중과 관련된 언문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계층상으로 보면 최상층인 비빈뿐 아니라 궁녀까지 국문을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2)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모든 궁녀들이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훈민정음이 보급된 것은 분명 아니었으며, 15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실록에서는 적지 않은 국문사용에 관련된 기록이 발견 되는데, 남녀 또는 궁궐 바깥의 일상생활 속으로 서서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71(선조4)년 정철의 어머니 ‘죽산안씨가 쓴 편지글’이 처음으로 발견되 더니 그 후 충북지역에서 ‘죽산안씨 편지글’보다 앞서 2년 이른 시기인 1569년(선조2) 에 작성된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이 발견 되었다.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에서 발굴한 편지는 [[신천강씨]]가 발신자인 한글 편지가 120여 통에 이르는데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사대부가 여성의 한글편지로서 당시 일반 여성의 한글 사용이 빈번하였음을 알수 있다.<ref>정복동, 「‘이응태묘 출토’한글 편지의 서체미 탐구」, 『저예학연구』 vol. 13, 한국서예학회, 2008</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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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글고문서]] | [[분류:한글고문서]] |
2017년 5월 21일 (일) 01:46 판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 | |
영문명칭 | A Korean letter from Gang of Shincheon to her married daughter Kim of Suncheon |
---|---|
작자 | 신천강씨 |
작성시기 | 16세기 |
소장처 | 충북대학교 박물관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30.0×42.0㎝ |
판본 | 필사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채무이(채무이)의 계배(계배) 순천김씨(순천김씨)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1977년 충청북도 청주시 내수읍에 있던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한글편지 188건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120여 건으로 가장 많다. 이 한글편지들은 1550년대에서 1592년 사이에 쓴 것으로 현전하는 한글편지 중 매우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간 생활사, 여성사, 국어사, 서예사 등에서 주목받아온 자료이다. 특히 이 편지에는 시집간 딸을 그리워하는 모정과 함께 남편의 첩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1]
편지 발굴의 의의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성이 한글을 사용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궁중과 관련된 언문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계층상으로 보면 최상층인 비빈뿐 아니라 궁녀까지 국문을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2)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모든 궁녀들이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훈민정음이 보급된 것은 분명 아니었으며, 15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실록에서는 적지 않은 국문사용에 관련된 기록이 발견 되는데, 남녀 또는 궁궐 바깥의 일상생활 속으로 서서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71(선조4)년 정철의 어머니 ‘죽산안씨가 쓴 편지글’이 처음으로 발견되 더니 그 후 충북지역에서 ‘죽산안씨 편지글’보다 앞서 2년 이른 시기인 1569년(선조2) 에 작성된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이 발견 되었다. ‘순천김씨 묘 출토언간’에서 발굴한 편지는 신천강씨가 발신자인 한글 편지가 120여 통에 이르는데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사대부가 여성의 한글편지로서 당시 일반 여성의 한글 사용이 빈번하였음을 알수 있다.[2]
지식 관께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신천강씨 |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신천강씨 | 채무이의 처 | A는 B의 어버이이다 | |
채무이 | 채무이의 처 | A는 B의 남편이다 | |
채무이의 처 | 순천김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채무이의 처 | 순천김씨 | A는 B에 소속된다 | |
충북대학교 박물관 |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6세기 | 신천강씨가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를 딸 순천김씨에게 보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6.628303 | 127.458326 |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가 소장되어 있다. |
청주시 내수읍에서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편지가 발굴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