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언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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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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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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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3년 [[수월거사]]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한글로 번역해 필사한 사경(寫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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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사용되는 [[제기]](祭器)의 명칭과 수량에 관한 기록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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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03년 [[수월거사]]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한글로 번역해 필사한 사경(寫經)이다. 표제의 『[[법화경]](法華經)』은 『[[묘법연화경]]』의 약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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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 책은 1903년 윤5월 11일에서 6월 26일까지 [[구마라집]](鳩摩羅什, 334~413)의 한역본(漢譯本)을 바탕으로 필사되었는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옮긴 편역(編譯)이다. 각 책 제1면에는 황실과 국가의 안녕을 축원하는 발원문(發願文)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시주자 명단이 있다. 이 명단에는 ‘출가하지 않은 여성 불교 신자’를 가리키는 ‘청신녀’라는 용어가 자주 보이고 있어 많은 여성들이 시주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5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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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사용되는 [[제기]](祭器)의 명칭과 수량에 관한 기록이다. 앞부분에는 자료의 명칭으로 ‘졔긔치부’와 ‘祭器記’를 쓰고, 뒷부분에는 작성 시기로 ‘갑오팔월 이십이일’을 명시하였다. 본문에는 실과접시 4죽 6립, 채접시 3죽 9립, 피접시 1죽, 저즌첩 2죽 3립, 소보아 4죽, 대보아 2죽2립, 식기 7, 바리 1, 종자 1죽, 대접 4립, 잔 8, 잔대 7, 촉대 8, 섭촉대 3, 작은 촉대 2, 주전자 2, 편접시 2, 산소편접시 4, 양푼 4, 쟁반 4, 술 1단, 저 1단, 족술 7, 구기 1 등을 기록 하였다. 그릇의 단위 가운데 ‘립()’은 낱개를 뜻하고, ‘죽()’은 20개의 묶음를 뜻한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55쪽.</REF>
  
==부연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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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례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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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후 제례의 종류를 크게 나눈다면 관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것과, 일반의 사적 집단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제례|공공제례(公共祭禮)]]에는 왕가와 [[종묘]], 관가와 [[대성전|대성전(大成殿)]] 및 [[향교]], 그리고 [[유림|유림(儒林)]]과 [[서원]] 등의 제례가 포함된다. 관을 중심으로 한 제례의 경우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적 제례의 경우 일반적인 조상숭배의 제례가 포함된다. 그들은 권위보다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을 추모하거나 애경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한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공제례의 경우는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가지 수도 많은 데 비하여, 사적 제례는 간단하면서도 형태가 몇 가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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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장철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1247 제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ref>
  
===={{PAGENAME}}의 유래와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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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기의 중요성과 그 종류===
『[[법화경|묘법연화경]]』은 (妙法蓮華經, 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मपुण्डरीक सूत्र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 또는 『[[법화경|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의 하나로,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되었으며, 초기 [[대승경전|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며 이 경전을 한글로 언해한 것이다. [[법화경|법화경(法華經)]]』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과 여러가지 단편(斷片)이 존재한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한문, 티베트어, 위구르어, 서하어(西夏語), 몽골어, 만주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민족들이 애용하는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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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례가 신분에 따라서 그 집단이 나누어지지만, 제기를 갖추는 것은 신분과 지위를 떠나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먼저 제기는 크기 용도에 다라 3가지로 나누어진다. 술과 물을 다루는데 쓰이는 제기, 제물이나 제찬 같은 제수(祭需)를 담는 제기, 그 밖의 용도 제기, 이렇게 3가지 이다. 사적 제례의 경우 위와 같이 3가지 형태로 나누어 갖추어져 있지만 [[종묘]] 제기의 경우는 국을 담는 국의 종류에 따라서 제기의 형태가 다 나누어질 정도로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98%EB%B2%95%EC%97%B0%ED%99%94%EA%B2%BD 묘법연화경],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 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Wikimedia Foundation, Inc.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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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장철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1247 제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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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전해진 {{PAGENAME}}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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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현재 한문으로 번역된 [[법화경|묘법연화경]]은 3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구마라집|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법화경|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T.0262)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법화경|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다.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경전의 핵심이다. 『[[법화경]]』은 모두 28개의 품(品: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는  『[[무량의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과 함께, 『[[법화삼부경|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98%EB%B2%95%EC%97%B0%ED%99%94%EA%B2%BD 묘법연화경],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 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Wikimedia Foundation, Inc.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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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해진 {{PAGENAME}}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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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우리나라에 『[[법화경]]』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는데, 그중에서 제일 먼저 이 경전이 들어온 것은 고구려였다. 고구려의 수도(427년 천도 ~ 668년까지)였던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성돌 사이에서 발견된 1천 자 정도의 글자가 남은 [[법화경|묘법연화경]]이 현재 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국유사』]]기록에는 백제의 승려 [[혜현|혜현(惠賢)]]이 [[수덕사]]에서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독송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고, 신라의 승려 [[원효]]는 『[[법화경]]』의 교리를 해설한 『[[법화경종요|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짓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법화경]]』판본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7권본이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로는 신라 시대 고승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 고승들의 저술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있다. [[계환]]의 주해 판본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진 까닭은 그 내용이 한국 [[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현존 판본을 살펴보면 고려 시대 3종이 있고, 조선 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98%EB%B2%95%EC%97%B0%ED%99%94%EA%B2%BD 묘법연화경],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 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Wikimedia Foundation, Inc.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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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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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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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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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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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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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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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보부, 『 종묘제기(宗廟祭器)』, 문화재관리국,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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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논문
**권희경, 「禑王 이후에 제작된 4질의 《妙法蓮華經》사경의 變相畵의 내용분석」, 『서지학연구』, Vol-28, 서지학회, 2004, 195~226.
+
**정현정, 「구준(丘濬) <가례의절(家禮儀節)>의 <가례(家禮)> 재구성에 대한 고찰」, 『大東文化硏究』, Vol-78,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2, 5-35.
**권형아, 「새로 발견된 한글 음역 사경 《묘법년화경》의 연구」, 『서지학연구』, Vol-29, 서지학회, 2004, 511~538.
+
**金奉佐, 「해남 녹우당 소장 <恩賜帖> 고찰」, 『서지학연구』, Vol-33, 서지학회, 2006, 217~249.
**강순애, 「조선조 활자본계의 《묘법연화경》 판본에 관한 연구」, 『한국비블리아학회지』, Vol-10, 한국비블리아학회, 1999, 55~92.
+
**권주영, 「해남 녹우당 소장 경대 연구」, 『미술사 논단』, Vol-41, 한국미술연구소, 2015, 141-166.
 +
 
  
 
[[분류:한글고문서]]
 
[[분류:한글고문서]]
 +
[[분류:이창섭]]

2017년 5월 19일 (금) 21:05 판

제기치부
한글팀 제기치부 01 표지.jpg
한자명칭 祭器置簿
영문명칭 A document about the names and numbers of utensils used in ancestral rites.
간행시기 갑오년(시간 추정하기)
기탁처 해남윤씨 녹우당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6.2×48.8㎝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표기문자 한글



정의

제사상에 사용되는 제기(祭器)의 명칭과 수량에 관한 기록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제사상에 사용되는 제기(祭器)의 명칭과 수량에 관한 기록이다. 앞부분에는 자료의 명칭으로 ‘졔긔치부’와 ‘祭器記’를 쓰고, 뒷부분에는 작성 시기로 ‘갑오팔월 이십이일’을 명시하였다. 본문에는 실과접시 4죽 6립, 채접시 3죽 9립, 피접시 1죽, 저즌첩 2죽 3립, 소보아 4죽, 대보아 2죽2립, 식기 7, 바리 1, 종자 1죽, 대접 4립, 잔 8, 잔대 7, 촉대 8, 섭촉대 3, 작은 촉대 2, 주전자 2, 편접시 2, 산소편접시 4, 양푼 4, 쟁반 4, 술 1단, 저 1단, 족술 7, 구기 1 등을 기록 하였다. 그릇의 단위 가운데 ‘립(立)’은 낱개를 뜻하고, ‘죽(竹)’은 20개의 묶음를 뜻한다. [1]

조선시대 제례의 종류

조선시대 이후 제례의 종류를 크게 나눈다면 관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것과, 일반의 사적 집단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제례(公共祭禮)에는 왕가와 종묘, 관가와 대성전(大成殿) 및 향교, 그리고 유림(儒林)서원 등의 제례가 포함된다. 관을 중심으로 한 제례의 경우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적 제례의 경우 일반적인 조상숭배의 제례가 포함된다. 그들은 권위보다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을 추모하거나 애경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한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공제례의 경우는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가지 수도 많은 데 비하여, 사적 제례는 간단하면서도 형태가 몇 가지 안 된다. [2]

조선시대 제기의 중요성과 그 종류

이렇게 제례가 신분에 따라서 그 집단이 나누어지지만, 제기를 갖추는 것은 신분과 지위를 떠나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먼저 제기는 크기 용도에 다라 3가지로 나누어진다. 술과 물을 다루는데 쓰이는 제기, 제물이나 제찬 같은 제수(祭需)를 담는 제기, 그 밖의 용도 제기, 이렇게 3가지 이다. 사적 제례의 경우 위와 같이 3가지 형태로 나누어 갖추어져 있지만 종묘 제기의 경우는 국을 담는 국의 종류에 따라서 제기의 형태가 다 나누어질 정도로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공공제례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종묘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대성전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향교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유림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서원 묘법연화경 언해 A는 B를 사용했다
묘법연화경 언해 해남윤씨 녹우당 A는 B에 소장되었다
묘법연화경 언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조선후기 묘법연화경 언해가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4.549787 126.619716 해남윤씨 녹우당에 묘법연화경 언해가 소장되어있다
37.391937 127.05446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묘법연화경 언해가 소장되어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55쪽.
  2. 장철수, 제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3. 장철수, 제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문화공보부, 『 종묘제기(宗廟祭器)』, 문화재관리국, 1976.
  • 논문
    • 정현정, 「구준(丘濬) <가례의절(家禮儀節)>의 <가례(家禮)> 재구성에 대한 고찰」, 『大東文化硏究』, Vol-78,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2, 5-35.
    • 金奉佐, 「해남 녹우당 소장 <恩賜帖> 고찰」, 『서지학연구』, Vol-33, 서지학회, 2006, 217~249.
    • 권주영, 「해남 녹우당 소장 경대 연구」, 『미술사 논단』, Vol-41, 한국미술연구소, 2015, 14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