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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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고려 930년(태조 13)에 출생하여 1018년(현종 9)에 입적한 고려시대 전기의 [[지종|원공국사(圓空國師)]]의 묘탑이다.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의 [[원주 거돈사지|거돈사(居頓寺)]] 터에 세워졌는데,<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14277&cid=51293&categoryId=51293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e뮤지엄』<sup>online</sup></online></html>, 국립중앙박물관.</ref> 민족항일기에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사람 와다(和田稔)가 소장하던 것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원주 거돈사지|거돈사지]]에는 지금도 큼직큼직한 돌로 석축을 쌓은 위에 법당지(法堂址)와 주춧돌들이 정연히 남아 있고 그 앞쪽에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은 고려 930년(태조 13)에 출생하여 1018년(현종 9)에 입적한 고려시대 전기의 [[지종|원공국사(圓空國師)]]의 묘탑이다.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의 [[원주 거돈사지|거돈사(居頓寺)]] 터에 세워졌는데,<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14277&cid=51293&categoryId=51293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e뮤지엄』<sup>online</sup></online></html>, 국립중앙박물관.</ref> 민족항일기에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사람 와다(和田稔)가 소장하던 것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원주 거돈사지|거돈사지]]에는 지금도 큼직큼직한 돌로 석축을 쌓은 위에 법당지(法堂址)와 주춧돌들이 정연히 남아 있고 그 앞쪽에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절터에서 동으로 약 60m 떨어진 곳에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원공국사탑비(圓空國師塔碑)]]가 있고,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은 그 뒤편 언덕에 있었으나, 현재 그 자리에는 지대석 두 쪽만 남아 있다.<ref>정영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1796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이 절터에서 동으로 약 60m 떨어진 곳에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원공국사탑비(圓空國師塔碑)]]가 있고,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은 그 뒤편 언덕에 있었으나, 현재 그 자리에는 지대석 두 쪽만 남아 있다.<ref>정영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1796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현재 탑은 바닥돌이 없이 바로 기단(基壇)이 시작되고 있다. 8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여덟 곳의 기둥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각 면에는 앞뒤 양면에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좌우 양 면에는 창문 모양을, 그리고 남은 네 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새겼다. 지붕돌 역시 8각으로 몸돌과 닿는 곳에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모방하여 새겼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2,01900000,11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검색』<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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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탑은 바닥돌이 없이 바로 기단(基壇)이 시작되고 있다. 8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여덟 곳의 기둥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각 면에는 앞뒤 양면에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좌우 양 면에는 창문 모양을, 그리고 남은 네 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새겼다. 지붕돌 역시 8각으로 몸돌과 닿는 곳에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모방하여 새겼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2,01900000,11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검색』<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지식관계망'''==
 
=='''지식관계망'''==

2017년 5월 17일 (수) 12:20 판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
답사 이후 추가 예정
대표명칭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영문명칭 Stupa of State Preceptor Wongong from Geodonsa Temple Site, Wonju
한자 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서빙고로 137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90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01월 21일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크기 높이 2.68m
건립시대 고려시대
관련승려 지종
관련탑비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정의

고려 전기의 승려 원공국사(圓空國師)의 사리탑으로, 원래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터에 있었다.[1]

내용

이 탑은 고려 930년(태조 13)에 출생하여 1018년(현종 9)에 입적한 고려시대 전기의 원공국사(圓空國師)의 묘탑이다.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居頓寺) 터에 세워졌는데,[2] 민족항일기에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사람 와다(和田稔)가 소장하던 것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거돈사지에는 지금도 큼직큼직한 돌로 석축을 쌓은 위에 법당지(法堂址)와 주춧돌들이 정연히 남아 있고 그 앞쪽에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절터에서 동으로 약 60m 떨어진 곳에 원공국사탑비(圓空國師塔碑)가 있고,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은 그 뒤편 언덕에 있었으나, 현재 그 자리에는 지대석 두 쪽만 남아 있다.[3]

현재 탑은 바닥돌이 없이 바로 기단(基壇)이 시작되고 있다. 8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여덟 곳의 기둥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각 면에는 앞뒤 양면에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좌우 양 면에는 창문 모양을, 그리고 남은 네 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새겼다. 지붕돌 역시 8각으로 몸돌과 닿는 곳에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모방하여 새겼다.[4]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원주 거돈사지 A는 B에 있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지종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지종 A는 B를 위한 비이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A는 B와 관련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답사 이후 추가 예정

영상

  • 궁궐수문장 K, "거돈사지", YouTube, 게시일: 2015년 2월 5일.

주석

  1. 정영호,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e뮤지엄』online, 국립중앙박물관.
  3. 정영호,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문화재검색』online, 문화재청.

참고문헌